“금리 인하, 성장·금융 안정 미치는 영향 함께 고려”
매일일보 = 이재형 기자 | 경기 둔화 우려가 확산하면서 커지는 금리인하 기대에도 부동산 관련 가계부채가 안정적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피벗(통화 정책 전환)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국은행이 시사했다. 지난 5월 이후 가계대출이 폭증하면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분기 이후 다시 높아지고 있어서다. 집값을 띄우는 가계대출이 경제 불확실성은 키우고 가계의 소비 여력까지 위축시키는 만큼 통화 정책 방향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은은 12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기준금리 운용 방향에 대해 “물가의 목표 수준 수렴 확신이 강해지고 환율도 레벨(수준)이 한 단계 하향 조정되고 있다”며 “향후 금리 인하의 시기·속도를 결정하는 데 성장 흐름, 기준금리 조정에 따른 금융안정 리스크(위험)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 성장 흐름의 경우, 더디게 회복되는 내수와 성장에 기준금리 조정의 파급 시차를 감안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한은은 진단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경기 관련 불안도 변수다.
금융안정 측면에서는 주택가격 상승에 연계된 가계부채 비율이 이미 금융 부문을 위협하고 성장을 제약하는 수준까지 높아진 것으로 우려됐다.
이번 보고서 작성을 주관한 황건일 금통위원은 “금리 인하가 성장과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며 “두 목표의 상충 정도를 최소화하려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거시건전성 규제의 적절한 조합이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이 발표한 ‘최근 주택시장·가계부채 상황 평가 및 시사점’을 보면 최근 수도권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소득, 사용 가치 등과의 괴리 폭은 다시 커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3분기(99.3%)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떨어져 올해 1분기 92.1%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한달 새 5조∼6조원씩 증가하는 추세대로 라면 올해 4분기 92.4∼92.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집값 상승기는 대체로 주택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출금리가 낮아지고 거시건전성 규제도 ‘완화적’ 상황에서 시작됐는데, 최근 상황도 유사하다. 다만 차이라면 과거와 달리 현재 전세가율이 낮아 갭투자의 비중이 아직 작다는 사실 정도다. 한은은 “최근 서울 등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과 비(非)아파트 기피에 따른 수급 불균형 우려, 금리 인하 기대 등에 따른 대출 금리 하락, 규제 완화와 정책금융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집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통화정책과 관련해 “수도권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추이가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서 향후 금리 인하 시기와 속도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경제주체들에 이런 정책 방향을 명확히 전달해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가 형성되지 않도록 시장 기대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거시 건전성 규제 등의 측면에서 주택공급 확대와 규제 강화 조치의 효과를 점검하면서, 필요하면 더 강화하는 조치를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