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농어민 소득 증대 위한 정부 지원 사업에 구멍 숭숭
매일일보 = 이선민 기자 |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최근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한 원인이 정부의 예측 실패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여름배추(7~9월)에 대한 정부비축 물량은 전년보다 51.5% 감소한 1105t이었다. 최근 3년간 여름 배추 비축물량은 줄어들었지만, 지난해까지 2279t 수준을 비축해왔다.
올해 비축 물량을 대폭 감소시킨 것이 지난해 감사원이 정부비축사업에 대한 감사 후 “매년 발생하는 수매비축 농산물의 폐기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부비축사업을 추진하라”고 권고함에 따라 농산물 비축 물량 결정이 소극적이고 사후적으로 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농산물 수확이 시작된 후 작황에 따라 수매 여부를 결정하게 되자 최근 9월까지 이어진 이례적 폭염으로 인한 배춧값 폭등에 대응할 비축 물량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정부비축사업으로 비축된 배추 물량은 7월 1105t, 8월 0t, 9월 0t이었고, 결국 정부는 지난달 중국산 배추 1100t 긴급수입을 결정했다.
아울러 올해 폭염으로 기후인플레이션이 꾸준히 예고됐음에도 정부가 이를 외면해 예측에 실패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추석이 9월 중순이었는데 추석 때까지도 고온이었다. 추석 무렵이면 날씨가 괜찮아져서 추석 지나 준고랭지 배추가 많이 출하될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이례적 고온이었다”고 설명했으나,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은 “이미 지난 8월부터 언론에서 금배추를 예상했지만, 정부는 ‘9월 배추 가격은 8월보다 하락하고 평년 9월보다 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국회도 언론도 다 걱정하는데 농식품부만 걱정하지 말라고 해놓고 걱정한 대로 일이 벌어지면 유례없는 폭염 때문이라고 핑계 대고 중국산 배추를 수입한다”며 예측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나아가 업계에서는 예측 실패로 인한 비축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한 후 후속조치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국민들을 위해 농축산물 물가 안정 정부 할인 지원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혜택이 고르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유통업체가 평년 대비 가격이 높아 소비자 부담이 커진 농축산물, 설·추석 성수품, 김장재료 등을 20% 할인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면 이를 사후 보전해주는 ‘농·축산물 할인지원사업’에 올해 1445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역 안배 등 별다른 지침 없이 유통업체에 지원금을 배정하면서, 지역별 배정액이 크게 차이가 난다. 올해 6월까지 오프라인 유통업체에서 정산 완료된 내역(총 1086억1700만원)을 보면 경기에 270억9200만원이, 서울에 259억5900만원 등이 지원됐다. 58%가량(530억5100만원)이 서울·경기에 집중된 것이다.
지역농협이나 전통시장은 농어촌 지역에서 이용 의존도가 높지만, 이마저도 수도권 쏠림이 있었다. 지역농협은 경기에 25억9000만원을 배정했으나, 충북은 3억4300만원만 지원됐다. 전통시장 역시 서울은 69억8700만원이 지원됐지만 강원은 2억7300만원, 제주는 2200만원에 그쳤다.
아울러 수산물 할인 지원사업은 정작 목표 수혜자인 어업인의 소득은 늘리지 못하고 유통업자의 배만 불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산물 상생할인 지원사업에는 2020년부터 올 7월까지 총 4228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해당 사업에 참여한 유통업체의 수산물 총매출액은 사업 시행 직전 연도인 2019년에는 1조6879억원이었으나 2023년에는 3조8356억원으로 2배 넘게 뛰었다. 특히, 대형마트 매출은 7000억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어업소득은 2023년 2141만원으로 2019년 2067만원보다 80만원 정도 증가한 수준에 그쳤으며, 어업소득이 어업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어업소득률은 2019년 29.8%에서 2023년 27.3%로 2.5%p가량 떨어졌다.
농·축산물 할인지원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함에도 일부 지역에만 집중돼 정책 효과가 떨어졌고, 수산물 할인지원은 매년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정작 어업인의 소득 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하는 등 정책효과를 보지 못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비축물량을 예측하거나 물가가 오르면 할인 지원 등 가격 조정에 나서는 것은 매년 수천억원의 국민세금을 투입하는 일”이라며 “지역 특성을 고려해 안배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 지침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