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명동성당을 가기 위해 명동전철역에서 내려 지하상가를 경유하게 되었다. 마치 외국에 쇼핑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도 종종 눈에 띄는 등 외국인들로 붐볐고 명동성당으로 가는 거리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으로 분주했다.
이러한 명동 중심부에 위치한 명동성당 입구에 해 질 녘 도착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한국 카톨릭의 상징이며, 한국 천주교의 총본산으로 언덕배기에 우뚝 서서 장중함과 위용을 자랑하는 붉은 벽돌의 성당이 해질녘 분위기와 어울려 반갑게 반겨주는 듯했다. 또한 이곳의 출사객,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일반 관광지와는 다르게 경건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뾰족집’이라는 이름으로 장안의 명물이었던 126년 전 준공 당시로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과거 서울 생활할 때 많이 들렀었고, 근 10년 만에 찾았어도 새롭기만 하기에 전과는 다르게 역사적인 관점에서 꼼꼼하게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성당으로 들어가 얼마 후 서울에서 혼사를 앞둔 아들과 저녁에 만나게 될 시절인연들의 건강과 앞날에 좋은 일만 생기고 날마다 향기 그윽하길 기도한 후에 성당 역사·문화 탐방을 시작했다. 명동성당(통칭)은 1898년(고종 35) 건립되어 옛 지명이 종현(鍾峴)이었기에 종현대성당으로 불리었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 후 서양인 배척과 천주교 박해가 중단되어 교세가 한창 커져갈 무렵인 1892년에 조선교구 제9대 교구장 뮈텔 주교가 한국천주교회 총본산으로서의 대성당을 짓기 위해 지금의 명동성당 위치로 옛 지명인 종현 마루턱에 터를 잡아 착공했다. 설계는 프랑스인 코스트(한국명:고의선)신부가 맡았으며, 1898년 완공된 이 성당은 고딕 양식의 정수인 석조가 아니라, 한국식 연와조로 지은 우리나라 유일의 순수한 고딕 양식 건축물로 우리나라 최대의 천주교 성당이며, 건축학·문화적 가치는 물론 근현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건물이자 한국사회의 인권 신장 및 민주화의 성지로 1977년 국가유산(대한민국의 사적 제258호)으로 지정되었고 천주교 서울교구 및 전국교구를 관할한다. 명동성당 태동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 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신앙을 받아들여 이루어졌다. 그리고 명동성당은 조선 천주교의 시작과 맥을 같이하고 프랑스카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인 최초로 청나라(북경)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승훈(베드로)이 1784년 봄에 귀국하여 서울 명례방(현 명동)에 있는 통역관 김범우(토마스)의 집에서 신앙모임인 ‘명례방 공동체’를 결성하였고, 이승훈(베드로), 다산 정약용(요한) 3형제, 권일신(프란시스 자비에르) 형제, 광암 이벽(세례자 요한) 등이 참여하고 그중 이벽을 지도자로 삼아 종교 집회를 가짐으로써 조선 즉 한국 최초의 천주교회가 창립되었다. 그러나 이 신앙 공동체는 이듬해 봄 형조의 관리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는 ‘명례방 사건’으로 김범우가 유배된 후 1787년에 서거하면서 와해 되었다. 이후 95년이란 세월이 지난 1882년 한·미 수호조약의 체결로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을 예견한 조선 천주교회 제7대 교구장 블랑(한국명:백규삼) 주교가 파리선교회의 대지 매입 및 건축에 따른 재정지원하에 ‘김가밀로’라는 한국인 전교회장 명의로 대지 매입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의 명동성당 자리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인 침계 윤정현의 저택을 매입했는데 바깥채만도 60칸이 넘는 넓은 집이어서 처음에는 한옥 그대로 교회로 이용했다. 블랑 주교는 이곳에다 우선 종현 서당을 설립, 운영하면서 예비 신학생을 양성하는 한편 성당 건립을 추진, 1987년 결국 김범우가 서거한 지 1세기가 흐른 뒤에야 그때 뿌린 씨앗이 밀알이 되어 명동성당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뜨면서 빛을 보게 된 셈이다. 그러나 당시 고종은 왕궁보다 더 높은 자리에 훨씬 높은 건물이 올라 가는 것에 분개했다.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화상(畫像)인 어진(御眞)을 모신 영희전(永禧殿)과 가까워 성당 건립으로 영희전의 풍수(風水)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조정에서 소유권을 억류하여 공사를 지연시켰다. 이처럼 성당 건설 문제는 조선 사회에 큰 이슈였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