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혜경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 가까이 되지만 불분명한 규제로 줄어들지 않는 사망사고에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란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처벌을 내리도록 하는 법안이다.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2022년 시행돼 올해 초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됐다.
중처법 시행 이후 재해 조사 대상 사망사고가 꾸준히 줄고 있긴 하지만 처벌법 시행 전과 비교해 그 차이는 미미하다. 고용노동부 재해 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중처법 시행 직전인 2021년 연간 재해 사망자수는 683명이며 법 시행 직후 2022년 644명, 지난해에는 598명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사망사고가 줄지 않는 원인으로 모호한 처벌 기준으로 인한 솜방망이 처벌과 중소건설사의 안전관리 구축 한계 등을 꼽았다.
‘중처법 위반 사건 접수 및 처분 현황’에 따르면 검찰은 2022년부터 올해 9월까지 총 147건의 사건을 접수해 이 중 62건을 기소, 18건을 불기소했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에서 구속 기소 사건은 2건에 불과했다.
기소된 기업 중 대기업·공공기관은 9건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중소건설사가 차지했다. 사고가 발생해도 대기업의 경우 전문가를 구성해 변호할 수 있지만 중소건설사는 재정 문제로 변호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기소된 내용 상당수가 중처법에서 요구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 미구축에 해당하나 중소건설사는 재정과 능력 면에서 체계를 구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대기업의 경우 중처법 시행을 전후해 관련 법에서 요구하는 체계를 이미 구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는 △경영자 리더십 △근로자 참여 △위험 요인 파악 △위험 요인 제거 △비상조치계획 수립 △도급·용역·위탁 시 안전보건 확보 △정기적 평가 및 개선 등 총 7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소건설사에서는 위 체계를 모두 구축하기엔 부담만 가중되고 있어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50인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중처법 준수 여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 10곳 중 8곳은 중처법 의무 준수 사항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중처법 의무 준수가 어려운 이유로는 전문 인력 없이 사업주 혼자 준비(47%)와 의무 사항 많고 복잡(36%)이 가장 많았다.
결국 건설사 자체 안전대책에 근로자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 관련 업계에서는 규제의 범위와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며 입법 보완 및 처벌 규정 구체화를 요구해 왔다.
반면 국토교통부에서는 올해 분기별로 진행해왔던 ‘건설현장 사고 사망자 현황’ 발표를 폐지해 건설현장 안전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토부는 2019년부터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대 건설사 중 사망사고가 발생한 회사 명단을 공개했다. 또 2020년부터는 이를 정례화해 분기별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사와 발주청 지방자치단체 명단과 숫자를 공개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지난해 2023년 3분기 명단 공개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다.
국토부에 따르면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사 명단을 공개할 법적 근거가 없고 사고마다 상황이 다르므로 일률적인 사망사고로 분류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국토부의 방침에 건설업계는 “건설사의 잘못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망자 수만으로 집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에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건설사 명단 공개 없이 자체적으로 안전관리가 강화될지는 의문이다.
이준원 한국스마트안전보건기술협회장은 “건설현장 사망사고의 80%가 중소건설사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열악한 사업장에서도 안전체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금 법이 개선되지 않으면 사고가 줄어들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모호한 부분의 법 기준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만구 안전보건진흥원장은 “구체적인 법의 시행규칙을 제시할 필요가 있으며 중소건설사에서도 중처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