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 '니나리찌' 인수하며 협력하자더니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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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 '니나리찌' 인수하며 협력하자더니 뒤통수?
  • 윤희은 기자
  • 승인 2010.03.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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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윤희은 기자] 삼성그룹 계열의 제일모직이 프랑스 명품브랜드인 ‘니나리찌’ 사업을 전개한다. 제일모직은 2010년 봄부터 니나리찌의 남성복라인을 시작으로 드레스셔츠와 잡화, 액세서리 등을 판매할 예정이다.

그러나 화려한 출발의 이면에는 영세업체의 뼈아픈 고통이 숨겨져 있다. 다름 아닌 영세 의류업체 쌈솔의 눈물. 쌈솔은 국내 니나리찌의 서브 라이센스 업체 중 하나로, 지난 10년 간 니나리찌의 드레스셔츠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제일모직이 니나리찌의 마스터 라이센스권을 인수하면서 쌈솔 직원 240여명도 동시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현재 쌈솔의 조재수 대표는 제일모직을 상대로 2년 째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으나, 제일모직은 “기다려 달라”는 말로 차일피일 합의를 미루고만 있는 상황이다. 

준비시간 벌려고 영세업체 속였나? 제일모직 “타 업체는 항의 없어”
계약서는커녕 들은 적도 없는 ‘2년 유예기간’ 주장에 공정위 면죄부

240여명 규모였던 영세 의류업체 쌈솔에게 있어 98년부터 시작한 니나리찌의 드레스셔츠 사업은 유일한 사업수단이었다. 쌈솔의 조재수 대표는 “내 브랜드 하나만 가져보자는 욕심으로 열심히 해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2007년 12월 제일모직이 니나리찌와 마스터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조 대표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더욱이 제일모직의 계약은 기존에 마스터 라이센스를 갖고 있던 AR코리아와 공식적으로 협의조차 하지 않은 ‘기습적인’ 계약이었다.

조 대표는 “당시 제일모직은 ‘국내에서도 니나리찌가 판매되고 있는지 몰랐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허탈해했다.

제일모직이 처음부터 조 대표에게 위협적인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스터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던 2007년 12월 당시에는 조 대표에게 “좋은 관계로 협력하자”는 말까지 했었다. 조 대표도 자신의 사업에는 별 지장이 없을 줄로만 믿었다.

끊임없는 제일모직의 ‘말 바꾸기’

2008년 5월 재계약을 맺을 당시에도 제일모직에서는 특별한 얘기가 없었다. 조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니나리찌 사업을 전개하게 될 줄로만 믿고 다음 시즌 제품을 미리 생산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2008년 8월, 날벼락이 떨어졌다. 제일모직에서 “재계약 종료기한인 2009년 12월 31일까지 사업을 정리하라”고 지시한 것. 3개월 전 재계약을 맺을 당시에도 없었던 이야기인데다가, 계약서에도 명기되지 않았던 내용인지라 조 대표는 더욱 당황했다. 게다가 이미 다음 시즌 제품까지 생산해놓은 탓에 창고에는 수 십 만장의 재고품들이 쌓여있었다. 그 재고품들을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처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조 대표가 항의를 하자 제일모직 측에서는 오히려 “다 알고서 재계약서에 서명까지 한 것 아니냐”고 답변했다. 제일모직 측에서는 2008년 5월 맺은 재계약에 대해 “단순한 재계약이 아닌, 2년 간 사업 정리할 기한을 주겠다는 ‘유예 기간’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2008년 5월 재계약 당시 조 대표가 들은 바 없는 사실이었다.

제일모직의 ‘말 바꾸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 대표가 “사업정리를 요구할 거면 기존에 쌈솔이 갖고 있던 매장 및 상품을 인수하던가, 더 많은 유예기간을 달라”고 끊임없이 항의하자 제일모직은 마지못해 2009년 2월 70억에 상품 인수를 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3월 10일 다른 담당자에게 연락이 와서 “없었던 일로 하자”며 결정을 번복했고, 2009년 4월 또 다른 담당자인 A상무로부터 연락이 와 “세 번 만나서 얘기를 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조 대표는 A상무를 믿고 세 번의 만남을 가졌고, 그 사이 A상무가 조 대표에게 “제일모직과 쌈솔의 관계에 대해 인터넷에 남긴 글을 삭제해주면 협의가 더 원활해질 듯하다”고 요구해 조 대표는 그대로 따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세 번의 만남이 끝나고, 조 대표가 인터넷에 올린 모든 글을 삭제하고 나서도 제일모직 측에서는 아무런 합의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2년 유예기간’에는 무슨 꿍꿍이가?

제일모직은 2007년 12월 마스터 라이센스 권한을 인수했을 때부터, 8개 업체들이 갖고 있는 서브 라이센스 권한을 모두 거두어들인 뒤 제일모직이 독단적으로 모든 니나리찌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쌈솔 등의 서브 라이센스 업체와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재계약을 맺은 것일까.

조 대표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이유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제일모직이 새로운 니나리찌의 사업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서브 라이센스 업체들이 사업을 그만 두어버리면 ‘니나리찌’의 존재감이 시장에서 사장되어버리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제일모직의 서브 라이센스 인수권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면죄부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일모직은 ‘2년 유예기간’을 주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자 입장에서 2년은 충분한 기한이 아니다. 실제로, 아직도 쌈솔의 창고에는 10만 장의 드레스셔츠 재고분이 쌓여있다. 조 대표는 “제일모직이라는 대기업이, 한 영세업체의 사업을 가로채가면서 그 업체가 갖고 있던 상품조차 가져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제일모직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른 서브라이센스 업체들 측에서는 아무런 항변이 없었는데, 유독 쌈솔만 그러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2년 동안 유예기간을 줌으로써 제일모직은 인수자로서의 의무를 다 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다른 서브라이센스 업체들은 주로 잡화 및 액세서리와 같은 니나리찌의 소규모 사업만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그마저도 다른 브랜드 사업들과 병행해서 하고 있는 입장이었기에 큰 타격이 없었다. 가장 큰 신사복 사업을 진행했던 원풍물산의 경우에는 코스닥에까지 상장된 기업인데다가 네 개의 대규모 브랜드 사업을 함께 하고 있었기에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입장이었다. 쌈솔과 같이 니나리찌에만 ‘올인’한 업체가 없는 것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협의가 충분히 되지 않아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은 인정한다”며 “그러나 이미 할 만큼 한 입장에서 더 이상 쌈솔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확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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