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정부가 발표한 투자활성화 대책이 ‘재탕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내외 여건 악화로 국내 경제가 사면초가에 처한 상황에서 기존에 발표하고 논의했던 사안들을 열거하는 식의 ‘눈속임’을 이어나갈 경우 박근혜 정부가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9일 대통령 주재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관광·벤처창업·건축투자 등 4대 분야의 투자활성화를 위해 218개에 달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부진에 빠진 수출 경기 활성화에 민관 자금 116조원을 동원하고, 건축 투자 활성화와 인수합병(M&A) 촉진 등을 통한 벤처·창업 붐 확산,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그리스 재정위기 등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번 대책에 대해 “기업인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정부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며 경기부양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작 산업계와 경제 전문가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지난 4월에 수출 부진을 타계하기 위해서 내놓은 ‘수출진흥대책’과 비교해 봤을 때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창조경제혁신센터 거점기능 강화나 도심 재개발 활성화를 위한 결합건축제도, 중국 거대 전자상거래업체의 협력 강화, 스마트공장 1만개 설립 목표 등 이번에 대책으로 제시된 것들의 상당수는 이미 이르면 집권 초기부터 올 초까지 반복적으로 제시된 대책들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간의 진행 사항을 표시하는 대신 이를 완전히 새로운 대책인양 발표한 셈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정부가 그간 7차례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는 등 투자와 관련한 수십 가지 대책을 내놨는데 이 대책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어떤 결실을 거뒀는지 판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역시 “투자활성화를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한꺼번에 내놓기보다는 큰 흐름을 제시하고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며 정부의 숫자 부풀리기식 정책 나열 행태를 꼬집었다.
문제는 정부가 이처럼 눈가리고 아웅식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속수무책으로 악화될 국내 경제다.
한국은행 역시 9일 수출부진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가뭄 충격 등으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 예측한 3.1%에서 2.8%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올해 성장률로 기대하고 있는 3.1%보다 0.3%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한은 측은 대내적 요인 이외에도 미국의 금리 인상, 그리스 사태, 중국의 성장세 등에 따라 하방 위험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별도로 발표한 ‘2015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도 올해 상반기 성장률 전망치(전년 동기 대비)를 2.7%에서 2.4%로, 하반기 전망치를 3.4%에서 3.1%로 각각 0.3%포인트 낮췄다. 2016년 성장률 전망치는 3.3%로 제시해 4월 발표했던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낮췄다.
대외 경기 상황도 만만치 않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 수정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글로벌 금융위기로 제로성장을 거듭했던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3.3%로 수정했다.
이에 경제 전문가들은 뭐라도 해야 하는 위기 상황인 만큼 정부가 국내 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는 엔저 등으로 여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며 “뭐라도 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계속해서 전방위 대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