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도기천·권희진 기자] 서울 도봉구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한일병원이 식당 및 급식시설 운영 위탁업체를 대기업 용역업체로 바꾸면서 직원들이 대량 해고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갑작스런 급식 질 저하에 일부 환자들 식판 던지며 항의
대기업 용역업체, 하청에 재하청…다단계 위탁 ‘도마 위’
병원 노조 “노조 만들자 해고 종용, 명백한 보복성 조치”
병원측 “위탁업체 고용 문제 관여할 수 없어” 모르쇠 일관
한국전력공사(한전) 의료재단인 한일병원은 1937년 경성전기(주)의 경전운수부 의무실로 출발, 1961년에 종합병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면서 1961년 7월에는 한전병원으로, 이듬해 12월에는 한일병원으로 개칭한 도봉구의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한일병원 식당은 병원 직영으로 운영되다, 1999년에 용역업체에 위탁을 맡겼다. 지난 2007년 (주)아워홈이 용역업체로 선정됐으며, 올해부터 A기업 계열사인 C사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매일일보> 취재결과, 지난 1999년 한일병원이 위탁경영을 시작할 때부터 최근까지 위탁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승계 약속은 지켜져 왔다.
하지만 올해 1월 2일부터 한일병원 식당 용역업체가 아워홈에서 C사로 바뀌면서 고용승계 약속이 깨졌다.
한일병원 식당 노조 측은 “고용승계를 전제조건으로 아워홈에 용역을 맡겼기 때문에 아워홈이 고용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한 반면, 병원 측은 “고용승계 부분과 관련해 아워홈과 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C사가 직접 위탁 용역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M&M푸드’라는 업체에 재하청을 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기업 계열사가 용역을 수주받아 다시 중소업체에 재하청을 주는 이른바 ‘다단계 하청’ 과정에서 식당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M&M푸드’로 용역업체가 바뀌기 6개월 전인 지난해 7월, 식당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한일병원과 아워홈의 노조 결성 관련 보복성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노조 측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7월 노조가 결정될 당시 한일병원과 아워홈이 노조를 결성하면 나중에 고용승계를 보장할 수 없다”고 직원들에게 엄포를 놨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C사로 위탁업체가 바뀌고 다시 C사가 ‘M&M푸드’에게 재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병원의 ‘눈 밖에 난’ 식당노조원들이 고용승계를 받지 못했고, 이는 한마디로 노조를 해체하기 위한 ‘꼼수’라는 게 식당 직원들의 주장이다.
최 지부장은 “병원 측은 위탁경영을 해온 지난 9년간은 별일 없다가 이제 와서 한일병원 소속이 아니기에 고용승계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한편 숙련된 식당직원들이 고용승계를 받지 못해 퇴사하면서 환자서비스 등 병원업무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식당 관계자는 “수년 째 환자들의 식단을 조리하는 직원들을 해고하고 새 용역업체가 종사원들을 모집하면서 배식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아 환자들이 제 시간에 식사를 못하는 불편이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지부장은 “한일병원 식당 조합원들은 지난 12월 31일자로 아워홈과의 계약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장근무에 들어가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해고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병원이라는 특성상 위탁업체들이 고용을 승계할 때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숙련된 직원(조리원 등)을 필요로 하는 점인데, 이번 한일병원 사태의 경우 오랜 경력의 직원들까지 해고당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덧붙였다.
저임금에 하루 12시간 노동
한편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병원식당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도 ‘도마 위’에 올랐다.
노조 측은 “15명이 노조를 결성한 한일병원 식당의 경우, 장시간 저임금 등 열악한 환경이 (주)아워홈으로 용역업체가 바뀐 지난 2007년부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여성 가장들로 40~60대 연령의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5시까지 출근하면서 밤늦은 시간까지 연장근무를 거듭해 왔다.
용역업체는 업무 용품조차도 ‘사비로 해결하라’는 방침을 세웠고,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로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용역업체로 전환 당시 근로조건을 보장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비정규직으로 전환, 실상은 타병원보다도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렸으며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조차 준수되지 못하는 환경에서 근무를 해 왔다고 전했다.
결국 식당 직원들은 지난해 7월 열악한 환경과 처우개선을 내걸고 노조를 결성했다.
하지만 이들은 비정규직 일반노조라 교섭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따라서 노조를 결성했지만 근무환경은 변한 것이 없었다.
아워홈 측은 “조합원 15명은 자의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며 2월6일 퇴직금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워홈 측이 ‘자의적인 사직’임을 강조했지만, 결국 이런 앞뒤 사정에 의해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한일병원 측은 “2007년도 위탁업체 변경 시 개인별로 자율적인 결정에 의하여 입사하였고 한일병원에서는 고용 및 승계에 대한 어떠한 요구나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한일병원 재단을 설립한 한국전력공사(한전) 측은 이번 사태와 관련 “우리는 한일병원의 재단일 뿐,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과 진보신당 등은 한일병원과 아워홈 측이 노조결성 이후 공공연하게 노조탈퇴를 권유했다는 정황을 들며, 이번 사태를 ‘노조 무력화를 위한 보복성 차원해서 벌어진 일’로 규정했다.
이들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병원급식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조사를 의뢰하는 한편, 급식에 대한 병원장의 직무유기에 대한 법적 고발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