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속 남성들은 모두 내 소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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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속 남성들은 모두 내 소유물이었다”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05.09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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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행세 했던 ‘간 큰 유부녀’ 남성들 알거지 만들었던 사연

온라인 게임서 만난 미혼남에게 “결혼전제로 사귀자” 유혹
일면식 없이 전화로만 애인노릇 9개월, 병원비 등 돈 요구
돈 빼내려 ‘이혼녀 ・ 처녀이모’ 1인3역…“생활비가 없어서”

[매일일보닷컴] 세상을 살다보면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민중의 지팡이’라 불리 우는 경찰이 원조교제 혐의로 적발된 여고생을 성추행한 사건이나 친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한 사건 등을 접했을 때가 그러하다. 

피를 나눈 가족도 자신의 가족에게 해코지하는 세상인데 하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연인사이는 오죽할까. 물론 모든 연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우리는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변심한 애인을 살해했다’ ‘연인에게 사기행각을 벌였다’ 등의 뉴스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인천서부경찰서는 지난 6일 인터넷 게임을 통해 알게 된 미혼남 김모(31)씨에게 처녀인 것처럼 접근해 혼인을 빙자, 돈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가정주부 이모(31)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단한번의 일면식도 없이 혼자 1인3역을 해가며 총 52회에 걸쳐 3,700여만원을 통장으로 송금 받아 가로챘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자에게 거금을 뜯어낸 이씨의 비법 아닌 비법을 <매일일보>이 따라가 봤다.

‘챙챙’ ‘휙휙’ ‘따그닥 따그닥’.

지난해 8월 23일 오후 8시경, 인천 연수동 이모씨의 집. 그날도 여전히 이씨의 집에서는 게임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찰에 따르면 평소 온라인 게임을 즐겨하던 가정주부 이모씨는 남편이 몇 해 전부터 도박에 빠져 생활비를 갖다 주지 않자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취미’를 이용했다. 바로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를 ‘잘’ 키워 게이머들에게 현금을 받고 파는 것. 게임을 통해 얻어지는 게임머니와 아이템들은 희귀할수록 또 캐릭터의 레벨이 높을수록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이모씨는 하루의 대부분을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이날도 열심히 캐릭터 키우기에 심취해있던 이씨는 길드(같은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모임)원을 통해 또 다른 길드원인 김씨를 알게 돼 함께 게임을 즐겼다. 게임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던 이씨와 김씨는 둘이 동갑인 점, 같은 인천지역에 살고 있는 점 등 공통점이 많아 친하게 지내기로 약속(?)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그렇게 시작된 이씨와의 인연이 자신에게 화가 되어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 처녀인데, 나랑 사귈래요?”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미 지난 2001년 10월에 결혼해 8살 된 아들이 있고, 비록 도박에 빠져 집에 자주 들어오지는 않지만 엄연히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다. 그러나 이씨는 김씨에게 자신의 결혼사실을 숨긴 채 “진지하게 만나보자”고 유혹했다. 사건을 담당한 한 경찰관계자는 김씨를 “서울로 상경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때가 덜 묻은 어리숙한 사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김씨는 소위 ‘서울사람’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당차고 깍쟁이 같은 면이 아닌 남의 말에 쉽게 넘어갈 것 같은 순진함을 갖고 있었다”면서 “내성적인 성격에 체격도 왜소한 탓에 여자를 만나본 경험이 적었던 것 같다. 그런 김씨로서는 이씨의 적극적인 행동이 싫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때부터였다. 이씨는 ‘온라인 게임친구’에서 ‘연인’으로 승격(?)된 이후,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씨는 김씨에게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하는데 수중에 병원비를 충당할 돈이 없다며 신세한탄을 했다. 또 밤에 귀가하던 중이면 으레 차비가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겼다. ‘남자친구’인 김씨가 급하게 돈을 건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했던 것. 경찰조사에 따르면 당시 이씨와 김씨는 일면식조차 없던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남자친구라는 명분 아래 묵묵히 이씨의 요구를 들어줬다. 비록 만나지는 않았지만 매일같이 휴대폰으로 전화통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아 정(情)이 쌓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만남을 갖으려고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김씨는 이씨에게 끊임없이 만나자고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이씨는 “몸이 아프다” “급한 약속이 생겼다” 등의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약 두 달간 ‘연기’를 하며 김씨에게 돈을 받아 챙긴 유부녀 이씨는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는지 김씨에게 자신의 ‘신분’을 일부 시인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에게 사실 자신은 ‘이혼녀’라며 미안해서 더 이상 연락하지 못하겠다고 말을 꺼낸 것. 유부녀든 이혼녀든 어쨌든 이씨와 김씨의 인연은 거기서 끝날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씨는 사과의 뜻으로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 한소정(가명)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씨가 소개한 그 친구는 물론 ‘아가씨’였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이는 연막작전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이씨에게 한소정에 관한 신상정보를 물었지만 ‘실제로 있는 사람이 맞다’고만 할 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면서 “‘아프다’ 등의 비슷한 이유를 대며 계속해서 돈을 뜯어내기 어려워지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크다. 이씨가 목소리를 변조해서 한소정 역할을 한 것”이라고 잠정결론 내렸다.

손 한번 못 잡아 보고 3천7백만원 날려

어쨌든 김씨 입장에서는 이씨의 친구 한소정을 소개받았고, 김씨는 지난해 12월경부터 최근까지 한씨를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여자친구로 생각하고 지냈다. 그러나 이 역시 이씨의 사기극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이씨가 경찰에서 “김씨에게 친구 한소정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한 차례 전화통화를 시켜줬다. 그러나 한씨가 이씨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그 때부터 내가 한씨인 척 김씨와 연락을 하면서 지냈다”고 진술한 데서 잘 드러난다. 결국 자신이 소개시켜줬다던 한씨 역시 본인이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경찰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한씨와 김씨가 전화통화를 한번 했다고 하는데 이조차 믿을 수 없다”면서 “관계에 변화를 주기 위해 새로운 가상인물을 등장시켜 범행을 이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부터 이씨는 범행을 목적으로 김씨에게 접근한 것이기에 이씨가 둔갑한 ‘한씨’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어도 김씨는 ‘여자친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거기다가 이씨와 함께 산다던 한씨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아프다는 얘기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비가 필요하다” “아버지 병원비 좀 보내 달라” “쌀을 사야하는데 돈이 없다” 등 갖은 이유를 대며 한번에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5백여만원까지 무려 52회에 걸쳐 돈을 받아갔다. 이제 막 상경한 김씨에게는 실로 무리한 요구였다. 또 한씨와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이였다. 그러나 김씨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한씨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지극정성으로 대해왔던 것. 하지만 한씨는 이런 김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나자”는 얘기에 늘상 “바쁘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이와 관련 김씨는 “비록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결혼할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한씨는 서로 전화통화로 안부도 묻고 하는 사이였다”고 말했다. 때문에 김씨는 한씨를 의심하지 않았다. 대출까지 해가면서 한씨에게 돈을 부쳐줬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경찰조사결과 김씨는 자신이 한씨라고 믿고 있던 이씨에게 3,700여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이 중 자신소유의 돈은 5백만원에 불과했고 나머지 3,200여만원은 모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김씨는 현재 직장에서 2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었는데 매달 갚아나가는 대출금이 200만원이었다”면서 “피의자 이씨가 피해액 갚을 능력이 없어 피해자를 구제해낼 방법이 막막하다. 김씨는 현재 파산신청 고려중”이라고 전했다.

‘바쁘다 바뻐’, 1인3역하며 돈 받아내

그러나 피의자 이씨와 피해자 김씨가 범행과정에서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김씨는 자신이 만났던 여성이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던,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여자친구’인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알아챌 수 없었다.둘은 이미 온라인 상에서 사진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씨가 자신의 사진이라며 보내준 사진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사진이었기에 때문에 김씨는 이씨 직접 만나고도 알아볼 수 없었다. 또 이씨의 모습은 실제 자신의 나이인 31세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일찍 결혼해 초등학생 아들까지 두고 있는 피의자 이씨는 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이었다”며 “게다가 살이 찐 체형이라 또래보다 연배가 있어 보였다”고 전했다.그렇다면 이 둘은 어떤 이유로 ‘대면’을 가졌던 것일까. 김씨와 이씨가 만난 날은 지난 2월 18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김씨와 한씨의 이모가 만난 날이다. 이 둘이 만나기전 이씨이자 한씨인 피의자는 김씨에게 “너무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병원비가 모자란다. 병원비 좀 구해달라”면서 “너무 아파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 이모에게 연락을 취할 테니 이모편에 돈을 건네 달라”고 말했다.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말에 신빙성을 주기 위해 또 다른 가상의 인물인 ‘한씨의 이모’를 만들어낸 것. 이를 위해 피의자 이씨는 자신이 직접 이모로 가장, 인천 시내에서 김씨를 만나 3백여만원을 건네받았다. 지난 몇 달간 전화통화했던 목소리를 알아들을 법도 한데 ‘답답하게도’ 피해자 김씨는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사기꾼의 손에 직접 돈을 쥐어주고 말았다. 이로써 피의자 이씨는 자신이 연출하고, 주인공으로 등장한 1인3역 모노드라마에서 ‘연기파 배우’로 입증 받은 셈이 됐다.

이미 혼인빙자 사기로 전과 2범 범법자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반드시 잡히는 법. 이씨의 이 같은 범죄행각은 피의자 김씨가 종사하는 인천 성남동 모 목재공장의 사장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여자친구는 있으나 얼굴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여자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서슴지 않고 돈을 송금한다’는 사실에 ‘사기’의 낌새를 눈치 챈 사장이 김씨를 이끌고 경찰서로 향했던 것. 이에 경찰은 이씨의 휴대폰 번호와 계좌를 추적, 이씨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처음 경찰은 피의자의 신변이 확보돼 도주위험이 없다고 판단, 불구속 수사를 감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씨가 지난 2005, 2006년에도 동일한 수법의 사기전과 2범이라는 점을 미루어 의도적인 사기로 판단, 지난 6일 구속시켰다.피의자 이씨는 경찰에서 “남편이 노름에 빠진 후 생계를 잇기 위해 전화상담원, 영업사원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면서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남자들을 한두 번 속인 게 이때까지 왔다”고 진술했다.한편 어리숙한 시골청년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연신 헛웃음만을 지으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는 게 경찰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피해자의 정신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사회에서 소외된 듯 풀이 죽어있고 자신감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며 “조사과정에서 피의자와 대면시켰지만 아무 말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여자가 남자에게 혼인빙자간음죄로 피해를 본 경우는 많이 보아왔지만 이처럼 남자가 여자에게 혼인빙자 사기를 당한 경우는 처음 접했다”면서 “피해자의 순진하고 어리숙한 면을 이용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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