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식 상팔자? 가난한 노인에게 ‘유자식’은 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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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 상팔자? 가난한 노인에게 ‘유자식’은 罪
  • 이선율 기자
  • 승인 2013.04.08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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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영등포 쪽방촌 통해 들여다 본 독거노인 현실

▲ 지난 5일 영등포 쪽방촌의 1평 남짓 되는 한 방에서 노인 한 분이 텔레비젼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이선율 기자>
[매일일보] “죽지 않고 살아서 큰일이여. 빨리 죽어야 되는데…. 지금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기운이 하나도 없어요.”

지난 5일과 6일 영등포 쪽방촌을 찾았다. 죽지 못해 산다는 최옥순 할머니(94·가명)는 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고 있다. 그나마 사는 낙이 있다면 캐나다에 이민 가 있는 딸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

시집가기 전까지 쭉 같이 살던 딸은 재혼한 남편이 사업부도로 파산해 빚쟁이들에게 쫒기다 결국 이민을 택했다. “엄마. 조금만 참아, 내가 꼭 데려갈게”라며 한 달에 한 번씩 편지와 전화를 한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연락이 뜸하다.

영등포 쪽방촌은 옥순 할머니의 경우처럼 오갈 데 없거나, 가정불화, 사업실패 등으로 생활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가족과 이웃에게 소외된 채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

오후 4시30분, 1.2평 남짓 되는 방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할머니는 불어터진 라면을 먹으며 저녁을 해결하고 있었다. 찾아온 손님이 반가웠는지 할머니는 먹던 라면 절반을 덜어 나눠줬다. 우측 선반에는 라면 1팩(5개)과 설거지 용품 및 식기류가, 중앙에는 휴대용 가스렌지와 텔레비전이 왼편에는 소형냉장고와 개켜진 이불하나가 보인다. 대부분의 물품은 광야교회로부터 기증받았다.

평양이 고향인 최옥순 할머니의 삶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인생의 절반을 함께 보낸 딸과 아들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할머니 딸은 남편이 두 번째 재혼해서 얻은 아이로, 재혼한 여자가 할아버지와 낳은 딸을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 할머니가 데려다 친딸처럼 키웠다.

할머니에게는 또 아들 하나가 있다. 이 아들은 다섯 살 때 버려졌는데, 그때부터 할머니의 손에 키워졌다. 당시 딸과 아들을 키우면서 할머니는 식당일을 하셨다.

“식당하다 58살 먹어서부터는 안했어. 아들은 장가가서 아들대로 살고, 영감은 마누라 얻어갖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둘 다 나한테 오면 돈돈돈돈 거리면서 돈 뜯어가고, 속을 많이 썩였어”

할머니의 남편과 아들은 사업실패로 형편이 어려워져, 식당일을 하는 할머니를 고생시켰다. 특히나 같이 살던 아들은 사업을 하다 파산해 결국 할머니가 사는 집까지 빚으로 다 날리고, 결국 빈털터리가 된다.

할머니는 도저히 아들과 살 수 없어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왔고 급기야 한강 다리에서 자살을 결심했는데 지나가던 택시운전사 주선과 구청의 도움으로 광야교회에 있는 쪽방촌까지 오게 됐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까지

최옥순 할머니가 영등포 쪽방촌에 산지는 13년 됐다.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에서 받는 돈은 40만원 정도 된다. 공과금 포함해 17만원을 매달 방세로 내고 있고, 나머지 돈으론 밥과 반찬값 및 교회 헌금으로 쓴다.

40만원으로 한 달 살아내기가 버겁지만 할머니가 이 돈을 받은 지는 2년도 채 안된다. 그 전에는 할머니 이름에 이제껏 키운 딸과 아들이 등재돼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되지 않아 고작 노령연금으로 9만원 받은 게 전부다. 할머니는 영등포 상담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유전자 감식 조사’까지 해서 겨우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정부가 개인의 최저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7년 우리나라에 닥친 외환위기를 통해 빈곤계층의 생활안정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의 필요성이 생기며 만들어졌다.

최저생계비와 가구소득의 차액을 지급(보충급여)하되, 의료ㆍ교육 급여 등은 현물로 급여된다. 급여는 최저생계비에서 가구소득과 타법령 지원액을 차감하여 산정하며, 수급자로 선정되면 생계·주거·의료·교육 급여 등 모든 급여를 함께 받는 통합급여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빈곤율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10월30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13년 보건복지부예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이하를 버는 가구 비율인 절대빈곤율은 2004년 이후 한동안 증가 추세를 보이는 등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 가난해지고 더 소외되고

2004년 8.2%였던 절대빈곤율은 2009년 10.9%까지 꾸준히 늘었고, 2010년과 2011년 10.0%로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다.

그런데도 기초생활수급자의 숫자는 2011년 7월엔 141만5000명으로 2010년 146만9000명에 비해 3.7%가 감소했다. 2011년 수급자도 빈곤율이 더 낮았던 2005년(9.4%, 151만3000명)보다 오히려 적은 숫자다. 수급자 수는 2010년 정점(156만9000명)을 찍은 후 급전직하해 올해는 2004년(142만4000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수급자가 감소한 이유는 2010년부터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 본격 가동되면서 부양의무자의 소득 파악이 정밀해진 탓이다.

재정 누수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에 따라 자격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최옥순 할머니 경우처럼 빈곤층이면서도 대상에 제외되는 층을 구제하는 데에는 더 인색해졌다. 연락이 끊긴 가족의 소득으로 인한 수급자 탈락이 속출하면서 민원이 줄을 이었고, 자살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이를 감안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월부터 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정의 경우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을 최저생계비의 130%에서 185%로 완화해 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했지만 9월까지 이 조치로 인해 신규로 편입된 인원은 예상치(6만1000명)의 절반 남짓한 3만7000명에 지나지 않아 문턱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비수급빈곤층은 400만명(전체 인구의 7.5%)정도에 달해 수급 빈곤층 147만명(2011년 기준)의 두배를 훨씬 넘는다. 이중 74.2%가 부양의무자 기준 초과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실에 따르면 2011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전체 인구의 3.0%(약 150만명)이나,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탈락한 비수급 빈곤층이 4.27%, 재산 기준을 초과하여 수급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4.28%, 최저생계비 기준을 초과하는 차상위계층 빈곤층이 0.25%로 수급자의 3배에 해당하는 가구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다.

수급자 숫자가 줄어든 배경에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의 개통이 있다. 인적 정보와 소득·재산정보가 반영되고, 건강보험공단 및 국세청의 전산자료가 수급자 선정 작업에 사용되면서 고소득의 부양의무가가 있거나 재산 상태를 허위신고한 사례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렇게 적발된 부정수급자들을 대상으로 이전에 수급 받았던 급여분을 환수하는 조치도 진행하고 있다.

영등포 쪽방촌은 건물 수만 67개동 방 540개로 480여 세대가 살고 있다. 한층에 샤워실과 주방, 화장실이 각각 한 개씩 있고,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각각의 방은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16명까지 사용하고 있다.
자식있는 죄…노인들 사각지대로 내모는 '부양의무제'

복지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가장 큰 구멍은 ‘부양의무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2009년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청탈락가구 중 부양의무자기준으로 탈락한 사례(43%)가 가장 많았다. 이와 같이 수급탈락의 사유 중 부양의무자기준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법 제947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양의무’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그리고 기타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 간에 ‘부양’할 의무를 지우고 있으며, 기초수급 체계에서 이야기하는 ‘부양의무자’는 법령상 20세 이상 54세까지의 남자와 20세 이상 44세까지의 여자 중에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문제는 부양의무자가 장기실업·도산 등 경제적으로 주변을 돌볼 수 없는 궁핍 상태에 있거나 가출, 의절 등으로 서로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경우에도 ‘부양의무’라는 고리를 끊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라에서 ‘부양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기 위한 조건을 살펴보면, 우선 부양의무자의 경제능력이 부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

구체적으로 부양의무자 본인이 수급자이거나 부양의무자가 직계존속(부모 또는 조부모 등) 또는 중증장애인 자녀(손자녀 포함)를 이미 부양하고 있는 경우, 일용직으로 먹고 살면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 이하의 재산(집, 금융재산, 자동차 등)을 가진 자 등이다.

그 밖에 질병, 교육, 가구 특성 등으로 인하여 부양능력이 없다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경우도 ‘부양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조건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영등포 쪽방촌의 경우도 이러한 사례가 많았다.

영등포 쪽방 상담소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신청을 했는데 자녀가 일정이상의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대상에서 탈락을 시킨다”며 “가정을 이루고 있는 자녀들이 130~150만원정도의 소득으로 부모님까지 도와줄 여력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 자녀들 또한 자녀가 있을 경우 더욱 힘들다”며 “심지어 사위가 버는 돈까지 소득이 있다고 탈락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부양의무제가 악용돼 기초생활수급자의 삶을 더욱 옥죄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빈곤층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편 새누리당과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갖고 부모, 자녀에 대한 부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을 위해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최저생계비 185% 미만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새정부의 법률 개정안을 두고 재원을 어떤 식으로 조달할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빈곤층을 사각지대에서 끌어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해법에 대해선 나오지 않은 상태다.


쉴틈 없는 영등포 쪽방 상담소

영등포 쪽방촌을 찾으려면 광야교회를 거치면 된다. 광야교회 안에 영등포 쪽방촌을 운영하는 상담소와 홈리스 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야교회는 영등포 쪽방촌과는 별도로 운영된다. 광야교회가 관할하는 영역은 홈리스센터만 해당된다.

영등포 쪽방 상담소는 서울시에서 교회에 위탁받아서 하는 사업으로, 운영비와 직원들 월급은 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쪽방촌은 건물 수만 67개동에 방 540개. 방과 방들이 숨쉴틈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방안에서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16명까지 생활한다.

영등포 쪽방 상담소에서는 주로 쪽방촌에 사는 주민 중에서 근로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만들어주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인 경우 일을 도와준다거나, 신용불량자일 경우 신용회복 관련한 업무를 돕는다거나, 긴급 구호물품을 전달한다거나 하는 등 생활 전반에 걸친 편의를 봐준다.

하지만 시에서 정해준 4명의 정원으로 480여 세대의 편의를 다 보기는 역부족이다. 쪽방촌 관계자는 “저희 같은 경우, (광야)교회, 홈리스센터, 영등포 쪽방상담소일까지 다 본다. 그래서 이 일 말고는 다른 일을 못한다”며 인력난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나 폭염이나 한파 때 취재요청이 쇄도해 많이 바쁘다. 각종 언론사 및 국회의원들, 대기업 회장들 등이 쪽방촌을 방문하는데, 그때 같은 경우 쪽방 어르신들도 카메라를 찍어대고 그러면 아주 질색들을 하신다. 평소엔 자주 찾아오지도 않다가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니까 왔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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