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환 중기 대출 '눈덩이'...금융권 부실 전이 우려
정책금융 보증잔액 '130조'..."채무불이행 위험 커져"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금리상승과 원자재 값, 환율 급등으로 하반기 기업경영이 악화일로다. 가장 먼저 부상하는 뇌관은 코로나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들이다. 대출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경영여건 악화로 기업 부실이 늘어나면 이를 보증한 금융권까지 큰 충격을 받으며 위기가 시작될 수 있어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물가·금리·환율 등 '3중고' 위기에 직면하면서 금융권은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오름세가 지속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미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년 만에 6%대를 기록했다. 이러한 물가상승 압력에 따라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발표한 8월 중소기업경기전망 지수는 78.5로 전월 대비 3.0포인트(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뒤 석 달째 하락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위기와 더불어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와 하계 휴가철 조업일수 감소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중소기업 대출이 확대하고 있다"며 "최근 금리·환율·물가가 상승하면서 중소기업의 경영·자금난이 가중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최근 '글로벌 공급망 차질의 특징 및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최근 글로벌 공급망 교란이 국내 일부 산업의 생산을 제약하고, 산업 전반에 걸쳐 투입비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은은 "자동차, 건설, 기계장비 등에서 부품·자재 수급차질로 생산이 제약됐고, 비용 측면에서는 원자재·중간재 가격 상승세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대부분 산업에서 비용부담이 가중되고 채산성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금융권에서는 코로나19 금융지원 조치가 주목되는 오는 9월 이후의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보증 만기연장, 이자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 그동안 가려졌던 부실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 이들에 보증을 제공했던 금융공기업들의 건전성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보증기금(신보)과 기술보증기금(기보)과 같은 보증기관들의 경우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 대한 보증 비중이 매우 높다"며 "연말로 갈수록 이들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신보, 기보, 지역신용보증재단,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18개 금융공공기관의 만기연장·상환유예 보증 잔액은 70조2806억원에 이른다. 이는 은행 및 정책금융기관의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출 잔액 130조1000억원의 54% 수준으로, 즉 정부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만기연장·이자상환 유예 제도의 상당부분은 보증 금융공공기관의 보증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최근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라는 두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기업들의 실적 둔화 및 재무구조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재무구조가 취약한 한계기업이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8일, 산업은행 산하 KDB미래전략연구소가 발행한 '한계기업 현환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계기업의 수는 꾸준한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한계기업 수도 증가했다.
실제 2011년 1353개였던 한계기업은 2016년 2165개에서 2021년 4478개로 증가했다. 분석 대상 기업의 비중도 같은 기간 10.2%→11.6%→18.3%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또 한계기업으로 한번 진입 후 그 상태가 지속되거나, 다시 한계기업으로 분류되는 빈도수가 증가하는 등 만성적 한계기업도 증가 추세다.
최근 10년간 2회 이상 한계기업이었던 기업은 지난해 기준 5651개로 전체 분석 기업의 4분의 1(23.1%)을 차지했으며, 5년 전인 2016년(2493개)과 비교해 9.8%포인트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금리인하, 원리금상환유예 등 안정화 조치에 힘입어 차입여건은 완화됐으나, 총자산 규모 대비 영업이익이 낮아지면서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한계기업의 낮은 이자보상배율이 개선되지 못하고, 영업손실로 이어지는 등 취약화되거나 만성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분석이다.
박찬우 연구위원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장기화되면서 기업의 생산원가 부담이 높아지고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가중돼 부실화 우려가 있다"며 "경제상황 변화에 대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고, 기존 한계기업이 만성화되지 않도록 세밀한 관리 체계가 요구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