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가 있으면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글쎄, 똘똘한 집 한 채 있고 다른 재산이 적어도 15억원은 넘어야겠지."
지인 K와 얼마 전 대화를 나누었다. 평소 부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K에게 오래전부터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왔고 꽤 신빙성 있게 답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똘똘한 집 한 채와 다른 재산 5억원이 있으면 부자"라고 했다. 당시 5억원이면 서울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제과점(요즘으로 치면 대형 스타벅스 매장)을 하나 열 수 있는 큰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데 10년쯤 지난 2012년 당시 쓰고 있던 책에 넣으려고 물었을 때에는 "똘똘한 집 한 채와 다른 재산 10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부자 기준이 10년 사이 2배로 증가한 거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은 50%가량 더 늘어난 15억원이 됐다. 너무 빠른 속도로 높아지는 부에 대한 기준이 마뜩지는 않았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 부를 유지하려면 물가상승률만큼 부를 늘려야 한다고 얘기한다. 물가상승률(%)은 보유한 현금가치 또는 구매력 하락을 뜻하므로 구매력을 지키려면 물가상승률만큼 부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먼 옛날 한 그릇에 1000원 하던 짜장면으로 외식했던 가정은 부자였다. 지금 8000원짜리 짜장면으로 외식한다고 부자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부자가 앞으로도 상대적인 위치나 순위를 지키려면 물가상승률만 따라잡아서는 안 된다. 부가 평균적으로 늘어나는 속도는 1000원에서 8000원으로 오르는 것보다 빠르다. 1000원에서 요즘 고급 레스토랑 음식값까지 증가하는 속도가 오히려 부를 측정하는 보다 정확한 기준이 될 것이다. K가 느끼는 속도도 이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투자자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방금 얘기한 속도를 '본전수익률'이라고 이름 붙이고 자산관리에 실제로 활용하고 있다. 한 투자자가 자산을 본전수익률에 못 미치는 속도로 불리고 있다면, 그는 돈을 잃고 있는 것이다. 2002년 5억원이 2012년 10억원이 되는 속도는 복리로 7%를 살짝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 기간 평균 7%가량 수익을 냈다면 본전만 지킨 것이고, 그 이상 벌었어야 부를 불린 것이다.
2012년 10억원이 올해 15억원이 되는 속도는 복리로 약 6%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이 평균 2%를 밑돌았고, 경기불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아우성쳤다. 그래도 통계청이 내놓은 가계금융복지조사 수치에 담긴 중산층 순자산 증가율은 6%에 달했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핵심은 부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는 속도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12년 펴낸 책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본전수익률이 6% 안팎일 것으로 어림잡았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3% 안팎 이자를 주는 정기예금은 3% 복리에 해당하는 속도로 돈을 까먹는 위험한 투자처다. 결국 본전수익률을 따라잡아야 한다. 돈을 잃지 않고 꾸준히 부를 늘리려면 장기 기대수익률이 6% 이상 나오게 자산을 구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더 구체적으로는 주식과 채권을 함께 담는 혼합형 펀드, 중위험ㆍ중수익 상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