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연체율 또 역대최저...만기연장에 '폭탄돌리기'
부실 대비 '현금' 쌓는 은행들...충당금 적립률도 '역대급'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지난 8월 은행권 연체율이 여전히 최저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착시'라는 비판만 키우고 있다. 코로나19 금융 지원의 일환으로 133조에 달하는 막대한 대출이 연체율 산정에 아직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난달 말 종료 예정이던 만기연장·이자상환유예 조치가 재차 연장되면서 이른바 '폭탄돌리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금융권에 확산되고 있다.
19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올해 8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 현황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24%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04%포인트 하락했다. 전월말과 비교하면 0.02%포인트 증가했지만 연체율은 여전히 최저 수준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8월 신규 연체 발생액은 1조 1000억원으로 전 월(9000억원) 보다 2000억 원 늘었다. 연체채권 정리 규모는 6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1000억원 줄었다.
부문별 현황을 살펴보면, 기업대출과 가계대출 연체율 모두 상승했다. 8월 말 기업대출 연체율은 0.27%로 전월 말(0.24%) 보다 0.02%포인트 올랐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21%러 한달 전 보다 0.02%포인트 상승했다.
은행 대출 연체 착시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금융당국이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금융권으로부터 받은 대출에 대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한차례 더 연장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출 만기는 최대 3년간 연장되고, 원금·이자 상환은 최대 1년 유예됐다. 코로나19 유행 직후인 2020년 4월 만기연장·상환유예 제도를 시행한 당국은 6개월 단위로 이를 연장하며 운영해 왔고 벌써 다섯번째 연장을 단행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만기연장·상환유예 지원을 받고 있는 차주는 총 57만명이다. 지원금액은 잔액 기준으로 141조원 규모다. 만기연장이 124조7000억원, 원금유예 12조1000억원, 이자유예 4조6000억원이다.
은행들의 불안감이 커질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은행들은 그동안 만기연장ㆍ상환유예 조치제도를 종료하고 각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연착륙 조치를 마련토록 해야한다고 주장해왔고, 불가피하게 연장하더라도 이자유예만큼이라도 제외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당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은행권은 이자유예의 경우 이자를 낼 돈조차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만기연장 및 원금유예보다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한다. 실제 연체를 내지 않아도 연체율에 집계되지 않다보니, 연체율이 최저점을 기록하며 ‘착시현상’을 보이는 상황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 인상 등 경기악화가 됐으니, 아마 그간 부실차주는 더 늘었을 것”이라며 “기존에 충당금을 쌓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글로벌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금융당국이 충당금을 더 쌓으라고 요구하고 있고, 특히 이번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지원 기간이 3년으로 늘면서 은행들의 충당금 이슈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금리인상기까지 겹치며 은행들을 향해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대손충당금이란 은행이 대출채권이 회수되지 못할 가능성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금액이다. 문제는 이미 은행들의 충당금이 역대 최대수준으로 불어났다는 점이다. 실제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평균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189.448%까지 치솟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대손충당금적립률이 잠재부실에 대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계속되는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로 숨겨진 부실채권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당국은 대손충당금과 별개로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도 신설하겠다는 방침이다. 특별대손준비금을 통해 총여신대비 적립률을 높이겠다는 복안에서다.
특별대손준비금은 기존 대손충당금·준비금과 별개로 필요에 따라 금융당국에서 추가 준비금 적립을 요구하는 제도다.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 확대, 주요 자산의 가격하락 리스크 등의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감안해 은행들의 손실흡수능력을 키우려는 목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 대출 부실화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손충당금으로 많이 쌓았는데 추가로 특별준비금을 적립해야 하는 것은 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며 "은행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과거 위기 시에는 금감원장이 구두로 특별대손준비금 마련을 권고했는데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현재 실무부서에서 작업 중으로 연내에는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