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문 걸어 잠군 은행·카드·저축은행 연체율 '꿈틀'
금융권, 충당금 역대급 적립...대출 상환 리스크 부상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을 제때 못 갚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은행과 카드사 등 금융사의 연체율이 일제히 상승 중이다.
금리 상승에 이자 부담이 늘어난 가계와 기업의 상환 여력이 떨어진 탓으로 풀이된다. 올해도 당분간 고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경기 부진까지 겹쳤다. 금융사의 건전성에 경고등이 커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해 연체율은 전년 대비 모두 오름세를 보였다. KB국민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연체율은 0.16%로 나타났다. 1년 전(0.12%)보다 0.04%포인트 올랐다. 신한은행의 연체율도 2021년 말 0.19%에서 지난해 말 0.22%로 0.03%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은 0.16%에서 0.20%로, 우리은행은 0.19%에서 0.22%로 연체율이 올랐다.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 연체율도 일제히 상승했다. 업계 1위인 신한카드의 연체율은 2021년 말 0.8%에서 지난해 말 1.04%로 높아졌다. 우리카드의 연체율은 0.66%에서 1.21%로 0.55%포인트 증가했다. KB국민카드(0.82%→0.92%), 하나카드(0.93%→0.98%)의 연체율도 1년 새 늘었다.
은행 등 금융권의 연체율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하향 추세를 보였다. 4대 시중은행의 경우 2019년 연체율은 0.19~0.3%였는데, 2021년에는 0.12~0.2%로 내려갔다. 코로나 19가 불러온 경제 위기에 대응해 취약 계층에 대한 금융 지원이 가동된 영향이 컸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지난해부터 고물가에 대응해 연이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서민들의 대출 이자 부담이 많이 늘어났다. 이에 따른 상환 여력 저하가 금융기관의 연체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연체율은 앞으로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경기 부진마저 심화할 가능성이 커서다. 주요 국내·외 경제기관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대로 전망하고 있다.
차주들의 금리 부담이 높아지면서 인터넷전문은행과 카드사의 대출 연체율이 동반 상승하자 제2금융권이 건전성을 관리하겠다며 신규 대출을 걸어 잠그고 있다. 돈을 구하지 못해 연체율이 치솟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연체율은 0.49%로 1년 전보다 0.27% 포인트 상승했다. 케이뱅크의 경우 아직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미 지난해 3분기까지 연체율이 오름세를 보였다.
지난해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자 인터넷전문은행의 연체율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특히 ‘포용금융’을 늘리라는 당국의 주문에 따라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가계신용대출 중 KCB 기준 신용평점 하위 50% 차주에 대한 대출의 비중)을 늘린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신한·삼성·KB국민·하나·우리카드 등 주요 카드사들의 연체율도 직전 분기와 비교해 모두 올랐다. 특히 이들 중 우리카드의 연체율은 지난 4분기 1.21%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신한카드(1.04%), 하나카드(0.98%), KB국민카드(0.92%), 삼성카드(0.86%) 순으로 집계됐다.
카드사들은 장기 카드 대출 카드론을 틀어막았다. 이날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삼성·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 등 7개 전업카드사의 개인 신용평점 700점(KCB 기준) 이하 저신용자 대상 카드론 신규취급액은 2021년 1분기 3조 4814억원에서 2년여 만인 지난해 4분기 1조 9749억원으로 43.3% 감소했다.
금융당국도 연체율 증가가 부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사에 손실 흡수 능력을 더 키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상반기 안에 은행권 ‘특별 대손준비금 적립 요구권’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의 이익은) 향후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튼튼하게 쌓는 데에 쓰는 것이 적합하다”라고 말했다고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전했다.
같은 기간 평균 이자율은 카드사별로 13.9~17.9% 수준에서 14.5~19%로 상하단이 모두 올라 법정최고금리에 바짝 다가섰다.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금리는 더 올리고 신규 취급은 줄여 카드론 빗장을 걸어 잠근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국내 주요 금융사가 대출 부실에 대비해 역대급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고금리로 가계·기업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뚜렷해지면서 건전성 관리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작년 금리 상승기 덕분에 사상 최대 이자수익을 벌어들인 점도 많은 충당금을 적립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에 충당금 등 손실흡수 능력을 더 키우도록 주문하고 있다. 금융사를 대상으로 '특별대손준비금 적립 요구권'을 올해 상반기 추가 도입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