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텐201, 中수입 판매대행부터 제조까지…1000평 공장 구축
<편집자 주> 부품·소재 제조 전문 중소기업의 거점 안산 시화공업단지. 거대한 기계와 휘몰아치는 바람, 장비 마찰의 교향곡으로 가득 찬 분주한 환경 속에서 여성 CEO들이 둥지를 트고 있다. 그들의 여성성과 냉혹한 환경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넘어서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게 될 것이다. 숱한 차별과 역경을 이겨내고 대한민국 제조업의 리더로 부상한 여성 기업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조선족, 여성, 저학력’.
스텐레스파이프 제조 전문기업인 중강싱스텐레스의 김순자 대표는 온갖 차별을 딛고 17년 연혁을 지닌 기업의 주인이 됐다. 시화공단의 김 대표 타이틀은 유일한 재외동포 여성 창업자다. 1996년 한국에 들어온 당시 세월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의 중강싱스텐레스가 있기까지 김 대표의 여정은 숱한 고뇌의 날들로 가득했다.
“갖은 설움을 다 겪어봤다. 하지만 한 번도 목 놓아 울어본 적 없다. 이 사회에서 내가 지닌 취약점을 알기에 더욱 더 독하게 버티고 이겨냈다.”
살아남겠단 일념 하나로 안 해본 일이 없다는 김 대표. 그녀는 최고보다 더한 최선이 지금의 자신과 회사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 “어디든 솟아날 구멍은 있다”…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켜라
그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무작정 컴퓨터를 구매해 인터넷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각종 정보와 인맥을 적극적으로 수집했고, 자연스레 사업의 눈을 키우게 됐다.
재외동포 여성이란 신분은 남성주의적, 보수적인 국내 제조업계에서 취약점으로 작용했다. 그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전화위복 삼았다. 재외동포인 만큼,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 현지 사정 파악에 해박하단 점은 중국 수입 영향력이 막대한 제조업계에서 강점이 됐다.
‘201스텐레스’는 현재도 국산이 없다. 해당 재료에 대한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단 판단이 서자, 그는 곧바로 현지 인맥을 활용해 수입가를 파악했다. 차익이 상당하단 것을 깨닫고, 관련 사업에 無자본‧無지식으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특히 중국어·한국어 모두 능통하다보니, 중간 무역상 없이 가격 경쟁력을 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스텐레스 수입 판매 대행으로 시작했다. 영업사원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고 제조의 완전 자립을 이뤘다. 그 속에서 숱한 차별을 겪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성실하고 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했다. 초창기 100평 남짓 규모에서 1000평 규모의 공장을 키워낼 수 있었다. 현재 중강싱스텐레스의 직원 수는 총 10명에 불과하지만, 공정 자동화로 다루는 파이프 수만 100여종에 달한다.
중강싱스텐레스는 STS 201,202,304,400계 스텐레스파이프를 제관하는 전문분야에서 나아가, 최근엔 고품질 생산을 위한 기술경쟁력 확보와 고객 맞춤형 서비스까지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못 다 이룬 학업의 뜻을 이어가고자 대학원에도 진학했다”며 “유럽 등 선진국의 제조업 사례를 공부해 회사의 미래 비전을 설계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기업이 아닌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