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사실상 흉상 이전 방조···與에서도 우려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정권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전 반대 의견과 함께 대통령실이 나서서 논란을 정리해야 한다고 하자, 대통령실이 "전직 대통령이 지나치게 나선다"고 맞서면서다.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념전이 전·현직 정권 대결 구도로 확장되면서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이력을 둘러싼 논쟁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문 전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참전으로 오히려 논란은 격화되는 모습이다.
현재 육사에 위치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이 알려진 이후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그러나 국방부와 육사는 이전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육사 교정 항일무장독립운동 영웅들의 흉상 철거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전 계획이 철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문 전 대통령은 지난 3일 재차 글을 올려 "흉상 철거는 역사를 왜곡하고 국군과 육사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라며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을 따로 철거·이전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홍범도 장군은 두 아들을 독립전쟁의 전투 중에 잃었고, 부인도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순국했다"며 "우리는 그 애국심과 헌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육사 차원에서 논의된 일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논란이 커졌으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며 "흉상 철거 계획을 철회하여 역사와 선열에 부끄럽지 않게 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실 차원의 정리'를 요청한 문 전 대통령의 메시지에도 대통령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실은 문 전 대통령 요청에 대해 지난 4일 "이 문제는 대통령실이 나서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 지나치게 나선 게 문제가 아닌 가 싶다"고 꼬집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 지난달 28일 "육사와 국방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거리를 두면서도, 홍범도 장군의 행적에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사실상 이전을 묵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연신 '이념론'을 설파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이를 정부여당에선 모종의 메시지로 받아들여 이념 논쟁이 더욱 증폭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념전이 신구 정권 대결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한 상황이다.
여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정부가) 현재로서는 '일본이 우리 편이다', '우리 편이 불편해하는 것은 삭제해야 한다. 지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이런 느낌이 많이 든다"며 "이것은 아주 패륜적 행태"라고 질타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홍범도 지우기' 논란이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정부가 꼬였다. 이념 문제가 아닌데 이념 문제로 규정한다"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