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가격에 중량은 적어져…사실상 가격 인상, 고지는 없어
용량‧함량 변경 사실 고지 법안 마련해야…해외 사례 주목
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최근 식품업계에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확산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들다’란 뜻의 ‘슈링크(shrink)’와 전반적·지속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리는 전략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식음료업체들이 가격 인상 대신 일부 제품의 용량을 축소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동일한 값에 더 적은 양을 구매하니, 사실상 가격이 더 오른 셈이다.
오비맥주도 지난 4월 카스 맥주 묶음 팩 제품의 캔당 용량을 375㎖에서 370㎖로 줄였다. CJ제일제당(숯불향 바비큐바), 농심(오징어집·양파링), 풀무원(점보핫도그), 롯데웰푸드(카스타드·꼬깔콘), 동원F&B(양반김·참치캔), 해태(고향만두) 등은 지난해와 올해 제품 함량을 줄였지만 소비자 고지는 없었다. 정부압박이 심화되는 상황 속 소비자 저항을 최소화해 고물가 위기를 대처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외식 업계에서도 관련 현상이 성행하고 있다. 포장지에 중량 및 성분 등을 표기하고, 기계적 패키징을 통해 동일 용량이 포장되는 가공식품과 달리, 외식 메뉴들은 조리 직후 소비자에게 전달돼 중량을 줄이기 더 쉽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외국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2일(현지시간) 과자 오레오의 크림 양이 줄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오레오 제조사인 몬델리즈 측은 쿠키와 크림의 비율을 바꾸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미국 현지 각종 커뮤니티에선 크림의 양이 적어졌단 불만글이 쇄도하고 있다. 펩시코가 생산하는 스포츠음료 게토레이는 1병 용량이 기존 32온스에서 28온스로 100ml 이상 적어졌다.
슈링크플레이션을 경계하기 위해 용량 및 함량 변경 사실을 고지해야한단 지적이 나온다. 일부 국가에선 슈링크플레이션이 소비자들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단 공감대를 형성, 관련 현상을 감시 및 제재하는 제도를 구축했다.
프랑스 재정경제부는 소비자가 민감하게 인지하기 어려운 정도로 중량을 줄이고 고지하지 않는 행위를 ‘사기’라고 칭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카르푸는 지난 9월 가격 인하 없이 용량이 작아진 제품에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캐나다와 독일 정부는 제품 용량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바꾸는 행위를 조사하는 팀을 만들거나 관련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에선 용량의 변화가 있을 시 6개월 이상 의무적으로 알려야한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눈속임용 상술이자 기만이란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식음료는 서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있어 가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만큼 가격 등락은 물론 중량의 변화에 민감하다. 중량, 개수를 늘릴 시 이를 강조한 마케팅을 행하면서 용량을 줄일 땐 아무런 고지가 없단 점에서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지각하기 어려운 양을 아무런 고지 없이 줄이는 것은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심리 저항을 줄이려는 꼼수이자 실질적 가격 인상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다”며 “서민 경제가 지속 악화하고 있는 상황 속 소비자에게 용량 대비 가격은 매우 중요한 소비 기준으로, 상품 중량 변화 표시 제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