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배상 절차도 본격화...투자자들 반발에 진통 예고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된 가운데, 총선 이후로 미뤄진 증권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감이 재점화되고 있다. PF 이슈는 총선이 이전까지 미뤄뒀거나 감춰진 부실들이 봇물 터지듯 터질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 4월 위기설이 돌면서 금융당국은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진 못하는 듯 보인다. 여기에 은행권의 홍콩 ELS 사태와 관련된 배상 절차도 총선 이후 본격 돌입하면서 투자자들의 반발과 진통도 예상되는 등 금융권의 리스크가 산적해 있는 모습이다.
우선 증권사들이 올해 감당해야할 잠재 리스크가 10조원을 넘어서면서 부실 관련 경고음이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증권사들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7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4조5000억원) 대비 3조3000억원(73.3%) 증가했다. 연체율도 같은 기간 3.35%포인트 증가한 13.73%로 금융권 중 가장 높다.
연체율이 높은 만큼 일부 대형사를 중심으로 조 단위 대손충당금(충당금)을 쌓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실제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23개 증권사의 지난해말 충당금은 4조2251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2조954억원)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증권사들의 충당 부채도 한 해 동안 4000억원 넘게 늘며 2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왔다. 충당 부채는 지출 가능성이 높은 부채다.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시 채권자가 대신 갚겠다고 보증을 선다.
증권사는 부동산 호황기 건설사·시행사에 보증을 서며 자금 조달을 도왔지만, 부동산 PF 시장이 침체되면서 그들의 부채를 떠안게 될 공산이 커진 상태다.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잠재 부실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거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증권사 29곳이 올해 감당해야 할 국내외 부동산 금융 관련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10조3000억원에 달했다.
대형 증권사는 해외 부동산, 중소형 증권사는 국내 브릿지론과 중·후순위 본 PF 익스포저가 가장 큰 난관이 될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마다 충당금 규모나 부실 위험 수준들이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위험한 수준에 있는 것 같다"며 "총선 이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춰둔 위험성이 터지게 될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이 업계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가 금융사 등을 동원해 일부 건설사의 부도를 일시적으로 막는 상황이다. 총선이 끝나면 숨어 있던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난다는 게 4월 위기설의 주된 내용이다. 즉 선거를 앞두고 시장 혼란을 최소화해 혹시 모를 타격을 막은 뒤, 선거 이후엔 기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다. 2023년 법인체 감사보고서 제출 마감일이 4월 15일이라는 점도 4월 위기설을 뒷받침한다. 감사보고서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PF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날 수 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소폭 올랐지만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과거 위기 대비 연체율 및 미분양 규모 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그간 건전성 강화 조치로 금융회사가 PF 부실에 대한 충분한 손실 흡수 및 리스크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고 정부도 다양한 정책 수단을 마련하고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차증권이 지난달 낸 보고서 ‘총선 이후 부동산 PF 시장 전망’에서는 정부가 총선 이후부터 추가 지원책이 아닌 구조조정 관리와 거시경제로의 파급효과 차단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야 모두 부동산 PF 리스크의 근본적인 원인인 주택매매 수요침체에 대응해 수요 진작 정책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앞서 지난 5일 금융감독원이 부동산 시장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해 금융투자업계에서 합리적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수수료 및 금리가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홍콩 ELS 배상 절차도 총선 이후 본격 돌입된다. 이미 금감원은 이번주(8~12일) 안에 홍콩에이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이하 홍콩 이엘에스) 상품의 대규모 손실과 관련해 은행권에 검사의견서를 보낼 예정이다. 금감원의 은행 ‘검사’ 단계가 종료되면서 은행권도 손실을 본 홍콩 이엘에스 투자자에 관한 배상 절차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다만 은행보다도 투자자들의 반발이 여전한 것이 문제다. 은행에서 자율 배상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100% 배상'을 바라는 투자자와 기싸움이 팽팽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하나은행에 이어 신한은행도 지난 4일 투자자 약 10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나머지 은행들도 이사회 등을 통해 자율 배상을 결정하고 손실이 확정되는 대로 투자자에게 안내해 희망자부터 배상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홍콩 ELS 피해자들이 총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자와 접촉하는 '릴레이 민원' 활동을 강화하기도 했다. 총선 이후에는 새로 구성될 국회를 대상으로 배상확대 압박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정치권 개입이 오히려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조속한 사태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과 적극 소통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