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한국 마라톤이 2024 파리 올림픽 출전에 실패한 가운데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되돌아보려 한다.
한국 마라톤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옹이 세계 1위, 남승룡 옹이 3위 제패 이후 1947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역사상 최대의 성과를 거두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1947년 제51회 대회에서 서윤복 옹이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고, 1950년 제54회 대회 때에는 함기용, 송윤길, 최윤칠 옹이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하며 험난하고 어두운 시절 한국 마라톤의 긍지와 자부심을 높였다.
손기정 옹은 은퇴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재능 있는 선수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에 나설 정도로 후진 양성과 마라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손기정 옹이 두 차례 대회에서 감독으로 선수들을 인솔하고 참가해 지도자로 나서며 한국 마라톤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날로 커져갔다. 그러나 1952년 제15회 헬싱키 올림픽 대회에서 최윤칠 옹이 4위를 하였고,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이창훈 옹이 4위, 1957년 제61회 보스턴 마라톤에서 임종우 옹이 3위, 한승철 옹이 5위를 차지한 뒤부터 한국 마라톤은 서서히 침체의 늪으로 빠졌다.
1974년 제45회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문흥주 선수 2시간 16분 15초를 기록하며 재기하는 듯 했지만 10년 동안 기록을 경신하지 못하고, 1984년 LA 올림픽 최종 선발전을 겸한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이홍열 선수가 2시간 14분 59초로 ‘마의 벽’이라고 불리던 2시간 15분 벽을 한국 최초로 허물었다.
1992년 일본의 벳부-오이타 마이니치 마라톤에서 황영조 선수가 2시간 8분 47초를 기록하며 한국 선수 최초로 2시간 10분의 벽을 넘었다. 그리고 드디어 황영조 선수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 선수와 ‘죽음의 언덕’으로 불리는 몬주익의 오르막에서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며 마지막 스퍼트 접전 끝에 기적적으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또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만들었다. 56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그는 올림픽 우승 이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도 우승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27세의 나이에 은퇴, 현재는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으로 후진 양성에 헌신하고 있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금메달이나 다름없는 은메달을 따냈으며 아시안게임 2회 연속 우승과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 등 20년 동안 41번의 마라톤 풀코스 완주와 1996년 애틀랜타 대회부터 2008년 베이징까지 올림픽 4회 연속 출전, 그리고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7분 20초의 한국 신기록을 24년째 보유하고 있는 ‘마라톤 영웅’이다. 그러나 2020년 1월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치성 질환인 ‘근육긴장이상증’으로 4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였고, 지난 21일 삼척에서 열린 ‘제28회 삼척 황영조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출발선에 다시 섰다. 이봉주는 약 100m 정도를 황영조와 김완기(삼척시청 육상감독), 서울올림픽을 출전한 유재성 등 마라톤 동료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 달리며 많은 이들에게 또다시 큰 희망과 감동을 주었다.
한편 한국 마라톤의 역사와 중흥을 위해 함께 뛴 대한육상연맹과 국내 메이저 대회를 이끌어 온 언론사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3월 첫 시즌 대회로 동아일보 주최 ‘플래티넘 라벨’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조선일보 주최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 중앙일보 주최 ‘달리자 나답게’ JTBC 서울마라톤, 경향신문 주최 ‘통일에 염원 안고 달리는’ 대통령기 전국통일구간마라톤대회, ‘세계 최고 우승 상금’ 대구마라톤과 ‘벚꽃길 문화유산 달리는’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대회 등 언론사와 지자체가 함께 한국 마라톤의 발전을 위해 뛰고 있다.
올림픽과 보스턴 마라톤에서 세계를 주름잡던 한국 마라톤은 1984년 LA 올림픽 대회부터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꾸준하게 성장하며 무리 없이 선수를 보내왔지만 2024년 파리 올림픽에 기준기록과 랭킹포인트 티켓을 충족한 선수가 남녀 한 명도 없어 출전이 좌절되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함평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