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예산안 협상 등 중요 국회 일정 차질 우려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채 상병 특검법'이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자 대통령실은 즉각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 22대 국회 개원 한 달이 갓 넘은 시점에서 지난 21대 국회를 강타했던 '거부권 정국'이 다시 발발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거야와 대통령실의 힘겨루기로 인해 '민생 실종 국회'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유력하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추진됐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해 최종 부결됐는데, 여야 숙의 없이 불과 37일 만에 강행된 '새로운 특검법'을 윤 대통령이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4일 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강행으로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언론에 "위헌성 때문에 재의결이 부결되었으면 헌법에 맞게 수정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일 텐데 오히려 위헌에 위헌을 더한, 반헌법적 특검법으로 되돌아왔다"며 "헌정사에 부끄러운 헌법유린을 개탄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 특검법은 21대 국회에서 추진됐던 법안보다 강력하다. 기존 법안은 대한변호사협회 추천 인사 4명 중 사실상 민주당이 특검 후보 두 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토록 했지만 새 법안은 변협의 추천 없이 민주당과 비교섭단체가 각각 한 명을 추천할 수 있게 했다. 수사 범위도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은 물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 국가인권위원회의 은폐·회유·직무유기 등으로까지 확대됐다.
거부권 행사 시한이 오는 20일인 점을 감안할 때, 윤 대통령은 이달 중순엔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불과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거야와 대통령 간 '입법 전쟁'이 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민주당이 '2 특별검사(채 상병·김건희)·4 국정조사(채 상병·양평고속도로·방송장악·동해유전개발)' 추진 의사를 밝힌 만큼, 정부·여당과 거야의 입법 공방은 한동안 지속될 공산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선 "민생이 실종됐던 21대 국회 상황이 벌써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거야의 입법 독주에 윤 대통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만 무려 14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기간 국회에선 주요 민생 법안이 뒷전으로 밀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 중 하나였던 연금개혁 논의는 공회전을 거듭했다. 물론 정부·여당은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거야는 윤 대통령의 '국회 무시'에 책임을 돌렸다.
당장 7월 임시회부터 얼어붙은 여야 관계로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이미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채 상병 특검법을 본회의에 상정하자 "우리 당은 앞으로 국회 의사일정에 협조할 수가 없다는 말씀 분명히 드린다"고 했다. 이 여파로 지난 5일 예정됐던 국회 개원식이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거부권 정국이 계속돼 여야 극한 대치가 풀리지 않을 경우, 민생과 직결되는 국회 일정이 파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10월에는 국정감사가 있고, 이후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여야 협상이 본격화된다. 이는 상대방의 협조 없이는 정상 진행이 곤란한 일정들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매일일보>에 "지난 21대 국회에서 반복되는 거부권 정국으로 너무 많은 국회 행정력이 낭비됐다"며 "민생 회복 논의에 쏟아부을 시간도 부족하다. 모두의 자중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