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싱글몰트, 버번, 테킬라, 럼…요즘 유통가 화두는 술이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다양한 주종을 홍보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수입 주류를 구하기 위해 가던 남대문 주류 상가, 일명 ‘남던’은 과거 유산처럼 느껴진다. 제품을 구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니 수요도 많아졌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해외 주류 수입액이 지난해 11억2870달러를 기록, 10년 전보다 2배 이상 성장했다.
주류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한 까닭에는 대형 유통사들이 힘을 쓴 덕도 있지만, 정책적인 지원이 만든 성과도 적지 않다. 2020년 국세청은 ‘스마트 오더’를 통해 주류 통신 판매를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제품을 결제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수령하는 방식이다. 스마트 오더 허용 이후 편의점 프랜차이즈가 위스키, 와인, 하이볼 등을 키워드로 마케팅 활동을 대폭 늘렸다.
키햐는 스타트업으로서 시장에 뛰어들었다. 편의점에 비해 오프라인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발 빠른 기획력과 행동력이라면 금방 치고 나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창업 후 2년여 지난 지금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제품을 취급하는 주류 스마트 오더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전국 17개 도매사가 키햐를 통해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 취급하는 제품만 단순 계산으로 7000여종이 넘어간다. 수도권 소비자는 2000여 제품을 한 자리에서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 잠재적 고객을 다수 보유한 플랫폼 특성으로 배너, 각종 기획전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위한 채널로도 사랑받고 있다.
스마트 오더 허용 결정은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에게 혜택을 제공했다. 주류 수입·도매사들은 그동안 각종 규제로 유통과 마케팅에 제한이 컸던 터였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 픽업 매장은 소상공인들의 부업거리로 자리잡을 수 있다. 그리고 고객은 다양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오프라인 채널이 가진 한계를 온라인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원하는 제품을 찾기 위해 더이상 발품을 팔아가며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러한 유통 지형 변화는 술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양주’라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위스키, 코냑, 럼 등 모든 숙성 증류주를 그렇게 불렀다. 품질을 따질 때에도 12, 17, 21년 등 단순히 연산만을 기준 삼았다. 소비 패턴도 주로 폭탄주로,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던 문화 아래에서 양주에 요구하던 조건은 ‘목넘김’ 하나였다.
스마트 오더를 시행하고 몇 년 사이에, 술은 취하기 위한 수단에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전통주까지 트렌드 반열에 올랐다. 선택지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오히려 1인당 주류 소비는 줄어드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인당 연평균 주류 소비량은 9.1L에서 2021년 7.7L까지 떨어졌다.
술과 관련된 트렌드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퇴근 후 집에서 입맛에 맞는 술을 혼자 즐긴다는 ‘혼술·홈술’과 최근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하이볼, 저도주 열풍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호에 맞는 고품질 술을 추구하고, 취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마시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좋은 문화적 토양이 만들어졌으니, 스마트 오더 또한 한층 더 성숙할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스마트 오더 시스템이 가진 장점이 더 빛날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술 시장이 지금처럼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