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사태' 후폭풍이 일파만파 번지는 가운데,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담긴 사직 전공의 처단 문구가 논란이다. 사실상 정부를 향한 의료계의 반발이 한층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4일 대한의사협회는 계엄령 직후 "현재 비상계엄과 관련돼 정확한 사실을 파악 중"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11시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밝힌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에 대한 대응이다.
포고령에 따르면,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명시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문자를 통해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 언급된 전공의 포함 파업 중인 의료인에 대한 근무 명령과 관련해 현재로선 사직 전공의로서 파업 중인 인원은 없다"고 밝혔다.
의협은 의사회원들의 안전 도모와 피해 방지를 위해 협회는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국민 혼란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 현장은 계엄 상황에서 정상 진료할 것임을 알린다고 전했다. 또 사직 처리된 과거 전공의들은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으니 절대 피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을 (계엄사령부에) 전달한다고 부연했다.
결국 계엄은 해제됐지만, 만약 유지됐어도 의료인에 대한 복귀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는 해당 명령 자체에 헛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계엄령은 복귀 대상 의료인 조건을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 이탈’이라고 지목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현재 이에 해당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정부는 지난 6월 각 수련병원에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이전까진 사직 처리가 되지 않아 ‘무단 결근’이었지만, 이후부턴 ‘휴직’인 셈 것이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계엄령에 대해 “사직한 의료인은 과거의 직장과의 계약이 종료됐으므로 ‘파업 중이거나 현장을 이탈’한 것에 해당하지 않다”고 전했다. 취재에 응한 P전공의는 “회사원도 일이 힘들면 업무를 그만두고 쉴 수 있다. 의료인의 합법적인 사직을 파업으로 보고 강제로 일을 하란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 사직 전공의 중 과반이 넘는 이들이 일반의로 재취업해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한 일간지는 사직 확정 전공의(레지던트) 9198명(지난 11월 18일 기준) 중 의료 기관에 재취업해 의사로 일하고 있는 전공의는 4640명이다. 전체의 50.4%가 의료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P전공의는 “과연 이들을 의료현장 이탈 의료인으로 봐야 하나? 현재 일하는 병원을 그만두고 본래 수련병원으로 돌아가라는 건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으로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한 만큼, 오히려 의료계의 투쟁심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전공의를 대표해 정부와 대립해 온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오전 12시 40분경 본인 SNS를 통해 "윤 대통령의 반민주적 행태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한 번 참담함을 느낀다"고 게시했다. "이번 비상 계엄으로 인해 무고한 국민들이 다칠 경우, 의사로서 언제 어디서든 최선을 다해 국민들을 치료할 것입니다. 독재는 그만 물러나세요"라고 비판했다.
내년 1월 치러질 차기 의협 회장 선거 후보에 이미 반(反) 의대증원파로 구성된 상황에서, 의협이 더욱 강경기조로 나설 가능성도 커졌다.
임현택 회장이 경질된 후 현재 비대위로 운영 중인 의협은 최근 회장 보궐선거 후보자 등록을 마감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전국시도의사회장협의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의협 전 회장), 최안나 대한의사협회(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이 출마했다. 이 중 강희경 위원장을 제외하면 모두 강경파로 분류된다.
S대 병원 전공의는 “후보별로 의정갈등을 대하는 태도 수위에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모든 후보가 의대증원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최근 의정협의체와 계엄령 등으로 의대증원에 대한 정부 정치권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의료계가 정치에 휘둘리면 안된다는 계기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