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도 총리 탄핵에 따른 재판관 인선 지체, 국정혼란 초래 등 부담
매일일보 = 정두현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의 6개 쟁점 법안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시한이 임박하자, 여야가 고도의 '눈치게임'에 돌입한 모습이다. 여권에서는 야당이 주도한 '쟁점 6법'에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전면 행사해야 한다는 기조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거부권 행사 시 즉각 탄핵"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오는 19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야당이 단독 처리한 6개 쟁점법안(양곡관리법∙국회증언감정법∙국회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보험법∙재해대책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한 권한대행은 앞서 국가재정 운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양곡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본지 취재에 따르면 나머지 5개 법안들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를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한 권한대행으로선 거부권 행사 여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이 '즉시 탄핵'을 벼르고 있는 데다, 이로 인한 충격파로 국정 공백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은 정부를 향해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미 국민의힘은 당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거부권 일괄 행사 의견을 제언한 것으로 알려졌고, 국힘 소속인 김태흠 충남지사도 이날 공개적으로 "야당의 입법 독주로 단독 처리된 농업 4법과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등 여섯 개의 법안은 거부권이 행사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매년 수조 원에 달하는 국가재정 부담만 가중시키고, 이는 미래세대에 청구서가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에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에 경고한다. 거부권 행사를 포기하라"며 "권한을 남용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묵과하지 않겠다.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과 '내란특검법', '김건희 특검법'은 국민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경고했다.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시 즉각 탄핵 가능성을 시사한 말로도 읽힌다.
다만 민주당의 탄핵 카드는 거부권 저지를 위한 경고용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 직무 정지로 국정을 대리하고 있는 총리까지 탄핵할 경우 국정 정상화의 첫 단추를 꿰기도 전에 재차 혼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합의가 결여된 단독 법안들을 매개로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지속됨에 따라 부정 여론이 누적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나아가 민주당으로선 쟁점 법안들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한 권한대행을 탄핵하게 되면 시급 과제인 헌법재판관 후속 인선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도 딜레마다. 현재 야당은 한 권한대행을 향해 국회 몫 재판관 후보자 3명을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이날 인사청문특위도 단독으로 꾸렸다. 특위 위원장에는 22대 국회 최연장자인 박지원(82) 민주당 의원이 임명됐다. 이로써 이달 중으로 인청특위 구성에 이어 국회 청문회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질 전망이나, 임명권자 탄핵 시 민주당의 '조기 대선' 스텝이 꼬일 수 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매일일보>에 "지금 권한대행을 탄핵하는 것은 여러모로 리스크가 크다"며 "총리 탄핵하고 후순위 권한대행까지 줄탄핵을 하게 되면 정작 시급한 헌법재판관 임명이 늦춰질 수 있다. 오늘 박찬대 원내대표가 탄핵을 직접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한편, 이와 별개로 내달 1일이 거부권 행사 기일인 '내란 특검법'은 한덕수 대행 체제의 고민이 가장 깊은 대목이다. 반려 시 '내란 동조' 비판에 노출될 수 있고, 내란 특검을 수용하게 되면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더라도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계엄·사법 이슈에 발목이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