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생산과 소비, 투자 등 주요 경제지표에 빨간 위험신호가 선명한 가운데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 정국의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경기 침체, 고환율 기조까지 겹쳐 ‘1%대’ 성장 우려와 내수 시장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트럼프 리스크’까지 닥쳐 안팎으로 위기론이 커지며 한국경제가 백척간두(百尺竿頭)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더군다나 부동산 시장에 매서운 칼바람까지 불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장기화와 대출 규제 강화 여파로 위축된 부동산 시장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수도 있어서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지난 12월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지난 9월 1만 7,262가구보다 1,045가구(6.1%)가 늘어난 1만 8,307가구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 7월 1만 8,560가구 이후 4년 3개월 만에 최대치다. ‘악성 미분양’으로 일컫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대부분 지방에 분포해 있다. 지난 10월 지방의 악성 미분양 주택은 1만 4,464가구로 전체 준공 후 미분양 1만 8,307가구의 79%가 지방에 몰려 있다. 불 꺼진 새 아파트가 늘면서 지방에서는 건설사와 분양대행사가 각종 할인이벤트를 펼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러한 악성 미분양 주택은 비단 지방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서울 주택 중 준공 후 미분양은 10월 말 기준으로 총 523가구로 서울 전체 미분양 917가구의 57.0%를 차지하는 규모로 절반을 넘는다. 올해 서울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은 153.87대 1로 3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낼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위치나 환경 등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곳들은 아예 외면을 받으면서 양극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 어두운 단면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동산 호황기에 대출을 받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주택을 매수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족(族)’은 아예 빚더미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지난 12월 16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부동산(토지·건물·집합건물)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12만 9,703건으로 집계됐다. 12월 신청 건을 제외하고도 이미 2013년 14만 8,701건 이후 무려 1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임의경매(任意競賣)’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3개월 이상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했을 때 채권자가 부동산을 경매에 넘겨 대출을 회수하는 절차다. ‘강제경매(强制競賣)’와 달리 별도의 재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원에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 주로 은행 등 금융기관이 채권자일 때 임의경매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임의경매는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최근 2년째 급증하고 있다. 저금리 시기인 2021년 6만 6,248건, 2022년 6만 5,586건이던 임의경매는 지난해 10만 5,614건으로 전년보다 무려 61% 증가했다. 올해 1∼11월 임의경매 건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5% 늘었다. 임의경매로 넘어간 부동산이 2년 만에 2배가 된 것이다. 특히 아파트 등 주거시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주택·집합상가 등) 임의경매 증가세가 ‘가파르다’라는 분석이다. 올해 1∼11월 집합건물이 임의경매 매물로 나온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5만 1,853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3만 5,149건보다 47.5%(1만6704건)나 증가했다. 저금리에다 집값이 뛰자 조바심에 부동산을 무리하게 매입했던 이들이 금리 상승과 시장 침체 영향으로 대출을 갚지 못한 결과로 분석이 된다.
올해 집합건물 임의경매를 지역별로 보면 상당수가 수도권에서 나오는 추세다. 매물이 집중된 경기에선 지난해 동기 대비 73%가 많은 1만 6,094건이 쏟아졌고, 부산(6,428건), 서울(5,466건), 인천(3,820건) 순으로 뒤를 이었다. 대부분이 저금리 시기에 ‘영끌’과 ‘빚투(빚내서 투자)’로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높아진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금융 취약층의 투자자들이다 보니 임의경매 건수는 금리가 높을수록 많아지기 마련이므로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한동안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따라서 ‘2030 청년층’을 비롯한 서민 금융 취약층에 대한 지원책이 선제적으로 마련되어야만 한다.
한편 지난 12월 16일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가 발표한 ‘2024년 11월 부동산시장 소비자심리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주택 매매 심리는 전월 대비 7.9포인트 하락한 109.8을 기록하며 전국 시장에 하락 압력을 더했다. 이는 4개월 연속 내림세로, 서울 주택매매시장은 상승에서 보합 국면으로 전환했다. 부동산 소비자심리지수는 부동산 중개업소와 일반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소비자의 행태 변화 및 인지 수준을 0~200의 숫자로 수치화한 것이다. 수치가 95 미만이면 하강 국면, 95~115 미만이면 보합, 115 이상이면 상승 국면으로 구분한다. 전국 주택 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도 전월보다 6.1포인트 내린 104.0으로 집계됐다. 수도권은 전월 대비 6.7포인트 하락한 106.4로 보합 국면을 유지했다. 매매시장 침체 가중으로 거래가 안 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경매로 진입한 물건들이 소화가 안 되는 상황이다. 이렇듯 경매 유입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미 경매시장에 진입한 물건들은 낙찰이 잘 안 되기 때문에 경매시장은 적체는 더욱 심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지난 10월 11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낮춘 데 이어 지난 11월 28일 2연속 ‘스몰컷(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을 전격 단행해 3.25%에서 3.00%로 0.25%포인트 낮춘 바 있어 기준금리는 소폭 내려갔다지만 아직도 시중은행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서민 취약계층의 원리금과 이자 부담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서민 경제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의 기본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각별 유념하고 고(高)물가의 어려움 속에서 고(高)금리 부담이 서민과 취약계층에 고스란히 전가되지 않도록 정부는 특단(特段)의 다층적·다각적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