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강화는 대외적 경쟁력” … 정부와 기업 인식 전환 절실
[매일일보 이선율 기자] 국내 기업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대책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며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고심인 반면,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산업현장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다양한 노력을 진행해왔다.
특히 선진국들은 사업자들의 개별적인 대응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유기적인 지원을 통해 산업현장의 안전 인프라를 구축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세계적 수준의 기술 수준에 걸맞은 ‘안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이 같은 선진국 대응 체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했다.
또한 산업현장의 근본적인 안전을 위해선 근로자와 사업자, 정부의 의식 제고와 함께 유관기관 간 유기적인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체계적인 안전경영체제 확립과 지속적인 지원투자 확대되야
“안전강화는 대외적 경쟁력”…정부와 기업 인식 전환 ‘절실’
지난 1988년 7월, 북해에서 작업을 진행 중이던 영국 옥시덴털 페틀롤리엄사의 파이퍼 알파(Piper Alpha) 석유 굴착선이 가스누출로 폭발해 현장에 있던 167명이 사망했다.
역사상 최악의 석유굴착선 재난으로 회자되고 있는 이 사건의 원인은 안전 및 관리소홀로 드러나 전세계에 충격을 줬다.
‘위기를 기회로’ 선진국의 안전 대응
폭발 사고 이후 영국에서는 해양구조물 종사자 교육이 필요성이 제기돼 국제 인증기관인 OPITO(Offshore Petroleum Industry Training Organization)가 설립됐다.
또 해양구조물이 한걸음이라도 내딛기 위해선 반드시 해양구조물 종사자 기초안전교육 (BOSIET)을 받아야만 승선이 가능하도록 규정이 강화됐다.
이를 통해 영국은 산업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루며 세계적으로 안전한 선진국가로 탈바꿈했다.
실제 영국은 지난 8년간 유럽연합 선진국가 중 산업사망재해가 가장 낮은 나라로 조사됐다.
영국보건안전청(HSE)에 따르면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1년간 사업장 사망사고자수가 148명으로 전년도와 비교해 172명이 감소했다.
특히 10만명당 사망자 비율이 5년전 0.6에서 0.5로 감소했다.
미국의 경우엔 다른 국가의 안전사고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이를 타산지석 삼아 자국의 산업현장 안전에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중국 가금류 공장에서 화재 폭발사고로 근로자 119명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내 근로 감독시 모든 사업장의 탈출구 확보에 대한 확인 강화 지침을 하달했다.
이를 통해 현장 감독관의 감독 업무 수행시 사업주가 작업장에 적정 수의 비상통로 확보와 통로상 장애물 제거 여부, 비상구 잠금 해제 등 점검토록 조치했다.
소형사업장의 안전까지 철저히 책임진 국가의 사례도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노동부는 지난해 6~7월 근로자수 20인 미만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련 지원을 요청을 하면 감독관이 직접 방문을 해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또한 프로그램 참여 사업장에 약 500달러의 지원금을 지원해 이 금액을 사업장의 개선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에서는 사업장에서의 요통재해 예방을 위한 지침을 지난해 6월에 개정했다. 노인 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에서 요통재해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복지 및 의료분야의 작업 전반에 지침의 적용과 허리부담 저감을 위해 개정을 실시했다.
이번 개정은 19년만에 내려진 것으로, 일본당국이 사업장의 안전사고를 조기 예방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 외에도 유럽의 경우 유럽 산업안전보건청(EU-OSHA)과 정식 캠페인 파트너들이 산업안전보건 우수사례 증진을 위한 회의를 개최하고 위험성 보고에 대한 근로자 훈련을 포함한 사고와 재해에 대한 학습, 모든 담당자들의 리더십 훈련과 산업안전보건 능력 향상,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화 등을 공유했다.
안전경영지원책 확대 필요
우리나라 역시 산업현장 안전을 위한 유기적 대응과 지원이 절실하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최근 안전에 대한 기업들의 의식이 고취되고, 안전관련 투자도 늘고 있는 만큼, 안전경영 강화를 위한 안전설비투자세액공제 등 정부의 안전경영 지원 정책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사업자 개별 대응이 아닌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한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범부처간 유기적인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각 부처들은 상호 협조아래 산업장 안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일례로 최근 노동부는 안행부와 산업장 안전을 감독할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또 기재부 등과도 기업들의 안전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한 규제개선안을 논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국 사업장은 190만개에 달하지만 감독관은 391명 정도에 불과하다.
감독관 1인당 맡은 사업장 수가 5000개소나 된다는 이야기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 영국은 1인당 맡은 사업장이 1300개소, 독일은 800개소, 일본은 1800개소, 미국은 2000개소 정도다.
이와 관련 박종일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국장은 “현재 안행부에 (감독관) 인원증원 요청을 했고, 기업들의 안전경영 강화를 위해 기재부에도 일몰연장, 공제율 상향 등의 의견을 적극 내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안전에 우선순위를 두고 안전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이 이뤄져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전 우선주의’ 인식전환 필요
전문가들은 기업과 정부에 안전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인식전환이 가장 시급하다고 이야기한다.
기업들은 당장의 수익창출에 집중하기보단, 안전관리 강화에 더 힘을 쏟을 것을 지적했다.
또 정부는 안전경영에 힘쓴 기업들에게 여러 혜택을 주는 등 기업들의 참여확대를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당장 코앞의 경쟁력과 수익에 매달린 나머지 안전정책이 무시되고 있다”며 “산업안전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아직도 이를 규제라고 보는 시각이 가장 큰 문제다. 안전관리 강화야말로 대외적 경쟁력이라는 정부와 기업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경돈 한국교통대 교수는 “과거에는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안전은 경제성장을 잠식하는 과제로 인식되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이 추진됐다”며 “현재는 전통적인 산업예방의 문제가 고령화, 산업구조의 변화, 인구구조의 변화, 여성, 이민자, 비정규직 근로자의 증가 등으로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근로자와 사업주, 지방과 중앙정부, 중앙행정기관 간 범부처적인 참여와 책임분담을 통해 ‘안전참여동기, 산재예방, 참여혜택’의 3가지 부문 간 유기적 관련성을 높이는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