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아닌’ 정남규의 자살, “사형집행 불안감 탓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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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아닌’ 정남규의 자살, “사형집행 불안감 탓 아니다” ?
  • 윤희은 기자
  • 승인 2009.11.30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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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윤희은 기자]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수도권 일대에서만 13명의 시민을 잇따라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22일 사망했다.

사인은 자살. 그는 쓰레기봉투를 꼬아서 만든 끈으로 21일 자살을 시도했고, 이후 교도관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2일 오전 2시 35분께 숨졌다. 흉악한 연쇄살인마의 죽음은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단숨에 끌어 모았다. 관심사의 가장 큰 초점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인 그가 ‘왜’ 죽었나”이다.

사실 정남규의 자살을 놓고 가장 혼란에 빠진 것은 “정남규는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해왔던 심리학자들이다. 감정변화가 없고 무감각한 사이코패스들은 자살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한림대학교 심리학과의 조은경 교수는 정남규와 유영철을 비교하며 정남규가 유형철과는 달리 ‘폭발형 사이코패스’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정말 정남규는 사이코패스인가? 그렇다면 왜 이론과는 달리 자살을 했을까.


‘사이코패스’는 실존하지 않는다

경찰대학교에서 범죄심리학을 강의하는 박정선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실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정남규도 사이코패스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이코패스에 대해 “정의조차 내리기 힘들 정도로 모호한 개념”이라고 말하고 “사이코패스를 검사하는 도구인 ‘PCL-R’은 단 20개의 문항으로 사이코패스 여부를 판단하는데, 이것은 매우 유동적이고 단순한 방법이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정신의학계를 비롯한 다양한 학계에서는 사이코패스를 부정하고 있다”며 “실존하지도 않는 사이코패스의 개념에 정남규를 끼워 맞춘 격”이라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박형민 박사 역시 사이코패스에 대해 “실체 없이 한때의 유행처럼 쓰이는 단어일 뿐”라고 일축했다. 그는 “여러 유형의 범죄를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위”라고 밝히고 “그런 단어가 정남규 같은 악질 연쇄살인범을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될 위험성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위 두 전문가는 “한편으로는 정남규의 자살 자체가 사이코패스를 부정하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있어서 동의했다. 그렇다면 정남규는 어떤 유형의 범죄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정남규는 과시욕구ㆍ자기합리화가 강한 ‘사회 부적응자’

박정선 교수는 정남규를 놓고 ‘자의식이 강한 반사회적 범죄자’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정남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성폭행당한 것을 시작으로 끊임없는 집단 폭행과 따돌림을 당했으며, 박 교수는 이 때문에 그가 내성적이고 폐쇄적이며 반사회적 성향을 내재하게 되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정남규는 경찰에게 진술할 당시 “하늘의 뜻으로 살인했다”는 말을 내놓았을 정도로 자신의 범죄에 대해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박 교수는 이것이 바로 자신을 ‘중화’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철저하게 합리화하는 행위라고 해석했다.

2008년 정남규를 인터뷰했던 박형민 박사도 “자신이 죽인 사람에 대해서는 일말의 안타까움도 느끼지 않았으면서 단지 자신이 잡힌 것을 안타까워할 정도로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정남규의 강한 자의식과 자기합리화적 성향을 인정하면서도 정남규를 ‘반사회적 범죄자’로 정의하는 것에서는 박 교수와 의견차이를 보였다.

박 박사는 “반사회적 범죄자라기보다는 ‘사회 부적응자’라고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전하고 “정남규는 어린 시절에 폭행과 따돌림을 당한 것이 범행동기와 연결됐다고 진술했으나, 이것은 반감보다는 이질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고 보인다”고 풀이했다.

박 박사에 따르면 정남규는 스스로를 사회속의 구성원이라고 보지 않았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사회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 자체를 일종의 도구로 봤기 때문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박 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여타 연쇄살인범에 비해 정남규의 범행 미수율이 높은 편인데, 이는 정남규 특유의 철저함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박사에 의하면 정남규는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경찰에 잡히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으며, 따라서 범죄를 저지르는 와중에 대상이 저항이 심하거나 성공률이 낮다고 판단되면 망설이지 않고 도망쳤다.

그는 범행을 저지를 때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꼈고, 신발 밑창도 뜯어낼 정도로 치밀했다. 냄새를 남기지 않기 위해 담배도 피지 않았다. 경찰에 들켰을 때 빠르게 도망치기 위해 달리기 연습까지 했다.

박 박사는 이런 철저함이 정남규 특유의 과시적인 성격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가능하면 ‘더 많이 죽여서’ 자신의 존재를 ‘극대화’하기 위해 위와 같은 치밀한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남규는 진술 과정에서 “거물을 죽이고 장렬하게 자살할걸 그랬다”며 특유의 영웅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남규의 자살은 ‘강한 자의식과 영웅심리’ 때문

정남규는 죽기 전 교도소에서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요즘 사형제도 문제가 다시(논란이 되고 있다),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라는 메모를 남긴 바 있고, 이것은 그가 사형집행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살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언론에서는 정남규의 자살 원인을 ‘사형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박형민 박사는 이 부분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박 박사는 “정남규는 과시적이며 다른 사람의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고 설명하고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자신을 영웅적 존재로 극대화하기 위해 자살했을 확률이 있다”고 전했다.

또한 박 박사는 “자기중심적인 정남규는 자신의 죽음이 타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이루어지길 원치 않았을 확률이 높다”며 “결론적으로는 강한 자의식과 주목받기 위한 욕망이 자살동기로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정선 교수도 정남규의 자살을 놓고 “자의식이 강한 정남규의 경우 타인에 의해 교수형을 당하는 것보다 스스로 죽는 것이 더 편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확률이 높다”며 박 박사와 같은 입장을 보였다.

박 교수는 또한 “이런 정남규의 자살은 기본적으로 ‘이기적 자살’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이기적 자살이란 스스로의 만족과 평안을 위해 자살하는 경우이며, 감옥에서 수형자가 자살하는 경우는 대개 이 부류에 해당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박 교수는 “정남규의 자살에는 반사회적 충동도 엿보인다”고 전했다. 교도관에 대한 복수의식으로 자살을 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형자가 자살하게 되면 해당 교도관은 처벌을 받는다. 정남규가 이것을 노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의견이다.

박형민 박사도 “교도관에 대한 복수심이 자살동기의 일부”라는 박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박 박사에 의하면 실제로 재소자 중에서 이런 이유로 자살하는 사례는 빈번하다.

‘정남규 자살’로 불거진 교도소 내 CCTV 논란

정남규 자살의 후폭풍으로 ‘교도소 내 CCTV 확대설치 논란’이 불거졌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은 23일 “감방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하고 당직근무자가 철저히 감시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남규의 자살을 방치한 교도소 관계자를 규탄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사형수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교도소 내 CCTV문제가 인권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 11월 “구금시설 내 CCTV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적 근거와 기준을 마련하고, 촬영 범위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등 인권 침해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법무부는 용변을 보는 하반신이 촬영되지 않도록 카메라 각도를 제한하고 감시 대상도 상습적으로 폭행·자해를 하는 자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형민 박사는 “이번 정남규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CCTV를 확대 설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히고 “정남규가 자살을 시도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교도관이 발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정도면 순찰도 효과적으로 돌았고 발견도 빨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적으로 이번 자살에 교도소의 잘못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재소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CCTV가 있어도 자살시도가 가능하다”며 “재소자들이 자살하는 시간과 교도관들이 CCTV를 통해 그것을 보고 재소자에게 접근하는 시간까지 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현행 체제를 유지해도 별 문제는 없다는 것이 박 박사의 입장이다.

박정선 교수도 CCTV를 확대 설치한다는 것에 있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는 “정 대안을 모색하겠다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CCTV보다는 열이나 동선파악을 이용한 첨단기기로 수형자를 감시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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