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감면조치 불구 기업들 눈치 작전
[매일일보=안미숙 기자] 기업들이 과거 분식회계 자진신고에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내년 증권 집단 소송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금융감독원이 지난해부터 과거 분식사실을 자진 고백할 경우 감리면제, 조치감경 등을 제시했지만 1년2개월 동안 회계부정을 밝힌 기업은 31개사에 불과했다.
더욱이 이들31개사 중 일부 기업도 자의반 타의반 성격이 짙어 순수한 의미의 자진고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분식회계를 자신 신고한 기업은 효성, 신풍제지, 에쎌텍 등에 불과하고 이중 신풍제지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진 신고를 실시했다.
신풍제지는 지난 3일 장 마감 후 공시를 통해 2004년에 148억원가량을 분식했다고 밝혔다.
신풍제지 ‘자진고백’, 효성 ‘어쩔 수 없이'
138억원 규모의 원재료와 10억원 규모의 제품재고 등이 과다 계상됐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신풍제지는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실적부진과 오는 4월 공장이전을 앞두고 신규 사업 진출 등 기업의 청사진을 다시 그려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잘못을 정리한 경우다.
효성은 증권선물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 이후에 분식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
지난달 23일 효성은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 이었던 회계기준 위반설과 관련한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지난 98년 효성물산과 합병 이후 해외 판매 법인에서 발생한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켜 5년간 1천525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재무제표에서 누락해온 사실을 시인했다.
또 같은 기간 지분법 손실충당금 2503억원도 누락했으며 자기자본과 자산총계는 각각 3511억원과 1007억원 과다계상한 점도 인정했다.
이후 효성은 해외 자회사의 지분법평가손실 등을 반영해 2001년 이후 재무제표를 차례로 수정했다.
한편 코스닥 상장법인인 에셀텍은 41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자진공시했는데, 지난 연말 약국체인인 리드팜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2004년의 분식이 드러났다.
경영권이 바뀌지 않아다면 계속 감춰졌을 수도 있다는 얘기.
그러나 금감원은 다른 대기업들의 고백을 유도하기 위해서인지 효성, 에셀텍 등도 모두 자진공시로 판단해, 감리 면제나 경감 조처를 내리고 있다.
한편 금감원은 자진신고에 대해 기업들이 눈치만 보며 버티기를 계속하자 지난해 말부터 당근 대신 채찍을 빼들었다.
우선 올해부터 분식회계의 주요 원인이 됐던 양도성예금증서(CD)나 기업어음(CP)에 대한 감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르면 CD나 CP가 실제 존재하는지 회계법인이 직접 각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해 확인하라는 것.
전홍렬 금감원 부원장은 최근 상장사 최고경영자(CEO)모임에서 “정부가 여러 반대를 무릅쓰고 올해까지 과거 분식을 해소할 좋은 기회를 주었는데도 기업들이 회피하고 있다”면서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것과 같다”고 강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분식회계 등을 자진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에 따른 신용등급 추락과 금융권의 대출 회수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시중은행의 신용평가시스템은 분식을 자진 고백할 경우 기업 신용등급을 즉각 낮추도록 돼 있다.
분식이 드러나면 신용조사를 다시 하게 되고 이에 따라 기업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대출한도가 감소하거나 금리가 올라가고 담보를 요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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