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는 2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ㆍ배임 등 혐의로 정몽구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불구속수사키로 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 회장이 1천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한 혐의로 오늘 오전 11시 10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에 대한 이번 수사는 지난달 26일 양재동 현대차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부터 시작됐다. 이날 압수수색은 정 회장은 물론 현대차 임직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전격적으로 실시된 것으로, 현대차그룹은 때마침 일요일이어서 갑작스레 들이닥친 검찰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대부분의 자료를 넘겨줬다.
당시 현대차 본사와 함께 압수수색을 당한 글로비스와 현대오토넷이 정의선 사장의 경영권 승계에 관여한 핵심 계열사라는 점에서 경영권 승계 과정이 초점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김재록 수사의 '가지'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실제 양재동 사옥 증축과정에서 관련법이 초고속 개정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때는 현대차 수사가 단순 로비사건이 아니냐는 추측이 힘을 얻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도 단순 비자금 조성 사건으로 결론지어지길 바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검찰이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김재록 로비사건과 별도로 다룬다는 이른 바 '가지에서 또 하나의 나무' 또는 '투 트랙 수사'로 방향을 갑자기 틀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이 와중에 정 회장이 미국 앨라배마공장 방문 등을 이유로 이달 2일 갑자기 출국하는 바람에 도피성이 라느니 장기체류의 가능성이 있다느니 하는 다양한 관측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결국 검찰을 자극해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는 등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정 회장은 이런 의혹을 불식시키고 결백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출국 1주일만인 8일 귀국,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나섰지만 검찰은 김승년 구매총괄본부장과 이정대 재경본부장, 김동진 총괄부회장 등 그룹 고위경영진들이 줄줄이 소환, 체포하면서 정 회장 부자를 '정조준' 해왔다.
검찰은 특히 정 사장을 지난 20일 소환 조사한 다음날 정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통보한 뒤 24일 정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으며, 정 회장 부자 모두 구속 또는 불구속, 둘 중의 한명 구속 한명 불구속 등 여러 방안을 놓고 고심하다 결국 정 회장은 구속, 정 사장은 불구속으로 최종 결정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현대차그룹에서는 정 회장과 정 사장, 임원진이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을 수행할 수 없었고 직원들도 동요하며 일손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기아차 조지아주 공장과 현대차 체코공장 착공식이 줄줄이 무기한 연기되는 등 각종 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했다.
현대차그룹은 또 정 회장 부자 사재 1조원 사회환원 등을 담은 사회공헌 방안과 중소 협력업체 대금 100% 현금 결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후속 상생협력 방안 등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한 파격적인 조치들을잇따라 내놓으며 검찰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길고도 긴' 한달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