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식 부족....기업 '묻지마 마케팅'도 극성
응원 관광 외국인 증가 '한류' 조짐, 개선 필요
신해철은 자신의 아내도 현재 임신 중이라 더욱 격분하게 된다며, “임산부의 배에 대고 큰 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르는가. 아기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사람으로서 이 같은 몰지각한 행위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중장한 신해철은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독일 월드컵 한국팀 응원 도중 가게에 들어가 “오늘 같은 날 좀 쏴야지”하며 돈도 내지 않고 물건을 마구잡이로 가져가는 행위, 차를 둘러싸고 여자 운전자를 내리게 한 뒤 차 지붕위에 올라가 춤을 추게 강요하는 행위, 혼란스런 분위기를 틈타 성용을 채우려는 비굴한 행위 등이 그것. 신해철은 “외국에서 붉은 악마의 열정적 응원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다”며 “하지만 일부 타락한 응원문화는 반드시 바로잡아 진정한 축제 문화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4년 전. 월드컵 개최국 한국은 4강 신화 못지않게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시민들의 관전 문화였다. 당시 응원단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월드컵 경기장과 그 주변, 붉은 물결이 넘쳤던 서울시청 앞 등은 사람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깨끗했다.
경기가 끝난 뒤 으레 쏟아져 나오던 산더미 같은 쓰레기는 물론 취객의 소란이나 성추행 등 낯 뜨거운 모습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을 청소하고 가져온 쓰레기를 담아 갔다. 이 모든 것들이 시민들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 빛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훌리건’ 소란으로 큰 후유증을 낳은 것과는 큰 대조를 보였다. 외신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난 14일. 한국축구 대표팀의 토고 전 승리로 월드컵의 열기는 변함없이 달아올랐지만 시민의식은 많이 느슨해졌다. 도심 곳곳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고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도를 넘어선 행동은 옥에 티로 남았다. 또한 19일 새벽에 있었던 프랑스전, 제주종합경기장에서도 쓰레기장과 술판이 연출됐다. 경기가 끝난 뒤 붉은 악마가 주변의 쓰레기를 담아 갈 것을 당부했지만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손길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특히 일부 시민들은 응원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도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이는가 하면 술에 취해 운동장에 쓰러져 잠을 자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 경찰은 경기가 시작과 끝나는 시점에서 교통지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일부 운전자들이 불법유턴과 신호위반 등을 하면서 종합운동장 일대에는 30여 분 동안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자칫 교통사고로 이어질 뻔 하는 아찔한 광경도 잇따라 초래했다.
시민 윤모씨(30)는 “극적인 무승부로 프랑스와 경기를 마쳐서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응원장에 남은 쓰레기를 보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들의 머리 위로 폭죽을 쏘아 올리는 행위, 소매치기와 성추행 범죄도 세계 각국이 칭찬하는 한국의 감동적인 응원모습에 아쉬움을 남겼다. 한껏 뜨거워진 열기에 편승해 한몫 잡으려는 기업의 ‘묻지마 마케팅’도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거리응원이대기업 주관의 행사로 바뀌면서 주최측이 뒤처리를 하겠지 하는 생각에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느슨해지면서 질서 이탈에 대한 욕구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됐다. 월드컵 자체가 상업화돼 폭력성이 과도해지고 자정능력이 발휘되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질서 속에서 승리를 즐기는 문화를 기대했던 시민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일부 이동통신사는 성인 이미지 접속을 유도하는 스팸문자를 보내는 마케팅을 펼쳐 월드컵 선진국을 무색케 했다.
한국의 대규모거리응원을 보러 외국인들이 방한할 정도로 우리의 응원문화가 ‘한류’로 이어질 조짐도 보이고 있는 만큼 차분한 응원 문화가 필요하다. 올에 티를 찾을 수 없는 선진화된 응원문화를 통해 외국인들의 뇌리에 ‘문화 한국’을 심어주는 계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붉은 악마’가 뒤처리까지 깔끔한 투혼으로 이탈리아의 ‘티포시 아주리(푸른 응원단)’, 스코틀랜드의 ‘타탄 군대’, 일본의 ‘울트라닛폰’ 등 각국 응원단을 제치고 ‘응원 월드컵’에서 진정한 챔피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종해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