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황동진 기자] 한때 재계 서열 10위권을 넘보던 한솔그룹의 행보가 수상쩍다. 최근 한솔그룹은 계열사 한솔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자마자 곧바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말들이 많다. 탄탄한 한솔그룹이 계열사를 그냥 방치한 것도 의아하거니와 워크아웃을 신청하자마자 바로 조직 개편에 돌입한 것도 수상하다. 일각에서는 일련의 행보가 잘 짜여 진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시각이다. 왜 이런 시각이 생겨나게 됐을까. <매일일보>이 알아봤다.
한솔그룹, ‘부실계열사 회생 책임’ 채권단에 떠넘기고 조직 개편에 박차 한솔건설 매각 자금으로 M&A 시도?…옛 영광 찾기 위한 고도의 전략전술
지난 10월 28일, ‘한솔 솔파크’란 브랜드로 꽤 알려진 중견건설사 한솔건설이 돌연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관련업계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솔건설은 한때 재계 서열 10위권에 넘보던 삼성가의 일원, 한솔그룹의 계열사이기 때문.
그룹에서 '팽'당한 한솔건설
한솔건설은 신청 이유에 대해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유동성 악화를 들었다. 실제 한솔건설은 자체 아파트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중견건설사로 자리 매김했지만,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장기화된 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 좀 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경북 구미와 경남 진해에 공급한 아파트 사업과 부산과 경북 안동에서 진행한 회원제 골프장 건설사업 등에서 대규모 미분양이 생긴데다, 자산(토지) 매각이 지연되면서 재무구조가 열악해졌다.이 외 지방 곳곳에 공급한 아파트 사업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한솔건설이 금융권 차입금과 PF지급보증액을 포함한 금융권 부채만 2,500억원대에 달한다. 이것만 놓고 보면 한솔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은 당연한 판단일 듯 했다. 이를 두고 증권업계에서도 대체로 긍정적 분석을 내놓았다. 비록 일시적이나마 한솔그룹 전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런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호재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한솔건설이 그룹에서 분리됐을 경우다. 한솔그룹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한솔건설과 다른 계열사 사이에 지급보증 등 채무보증 관계가 전혀 없는 상태여서 법적으로 지원할 방법이 없어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됐다”며 “한솔건설에 대한 지원 여부는 주채권은행의 방침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이 관계자의 말대로 한솔건설이 그룹에서 분리될지는 아직 미지수인 상황이다.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 지 지금으로선 단정할 수 없기 때문.
한솔건설 워크아웃 둘러싼 '말.말.말'
이런 가운데, 이번 한솔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을 둘러싸고 재계에서는 이상 야릇한 말들이 돌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한솔그룹이 부실계열사를 채권단에 떠넘기기고, 이를 통해 마련한 여력으로 지배구조 강화와 그룹 새판 짜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현재 한솔건설의 지분 구조를 보면 그룹의 지주사인 한솔제지가 49.5% 지분 보유하고 있으며, 한솔EME가 50.45%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한솔제지는 한솔EME의 32.76%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한솔제지가 한솔건설의 지분 100% 보유하고 있는 셈. 그런데 한솔제지는 이번 한솔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기 직전까지 만해도 9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워크아웃 직전까지 조금씩 지분을 줄여 나가더니 결국 40% 후반으로 줄였다.이를 볼 때, 이미 오래 전부터 한솔그룹은 부실계열사 한솔건설을 회생시키려하기 보다, 채권단에 책임을 떠넘기려고 계획했었다는 분석이다.물론 항간에는 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로 유명한 일명 ‘장하성 펀드’ 때문에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됐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한솔건설이 유동성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한솔제지에 증자 참여 등 지원 요청을 했지만 한솔제지 이사회에서 ‘장하성 펀드’가 선임한 한 사외이사의 반대 입장 표명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워크아웃을 결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하튼 한솔그룹은 애초부터 한솔건설을 ‘팽’ 시킬 것을 염두에 뒀다는 시각에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솔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자마자 보란 듯이 대대적인 조직 개편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란 것이다. 달리 보면 조직 개편 일환으로 한솔건설을 워크아웃 시킨 것일 수도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솔그룹은 신사업인 발광다이오드(LED)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솔LCD와 크리스탈온을 합병하고, 제지와 전자(LCD, LED 등) 두 분야를 주축으로 그룹의 사업을 재편, 나아가 M&A까지 시도할 계획이다.
한솔그룹의 사업 재편 위한 잘 짜여진 각본?
이 같은 정황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솔그룹이 부실계열사의 부담을 금융권에 떠넘기려는 부도덕한 행위”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주력 부문인 건설을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빼려는 수순으로 보인다”며 “제지 등 그룹 핵심 사업부문까지 부실의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계산도 포함됐을 것”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이 같은 지적 때문일까. 채권단 측도 상당한 고민에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은행 등 채권단은 한솔그룹의 지원 의지가 미미하다고 판단, 한솔그룹의 실질적인 사주인 이인희 고문 측에 한솔건설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한솔그룹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인희씨가 지난 1991년 삼성그룹에서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를 분리해서 독립한 회사로서 한때 20여개에 이르는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서열 10위권을 넘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추락을 거듭, 현재 5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또한 한솔그룹은 조동길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지만 실질적인 한솔계열 사주는 여든을 훌쩍 넘긴 이인희 고문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