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손실보전약정은 수천억원 상당의 채무 부담과 관련된 내용으로 원고와 피고 모두 재산 상태에 중요한 사항이 될 수 있음에도 이를 구두로 약정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며 "현대증권은 당사자가 아니라 계약의 체결을 주선하거나 중개해 준 역할을 한 것으로서 거래로 인해 입게 될 기타 손실 등을 보상해 줄 법적 의무는 없었던 점 등에 비춰 손실보전약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2차 각서는 원고의 주장과 달리 '원고가 이 사건 주식을 CIBC에 매각하는 건'에 한정돼 있거 혹시 있을지 모를 당국의 제재 및 CIBC에 이전될 주식의 조기재매입 등의 문제에 관해 현대증권 측이 책임을 지고 처리·보증한다는 내용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원고가 1997년 7월 CIBC로부터 이 사건 주식매매계약에 따른 매매대금을 수령한 후 당국의 제재 및 주식의 조기 재매입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각서에 따른 책임은 발생하지 않은 채 종결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닉스(옛 현대전자)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97년 보유하고 있던 국민투신(현 푸르덴셜투자증권) 주식 1300만주를 현대증권을 통해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주식매수자로 선정된 캐나다 CIBC(Canadian Imperial Bank of Commerce)은행은 국민투신 주가하락을 염려해 3년 후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을 요구했고, 하이닉스와 현대증권은 "풋옵션을 행사하면 그룹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 주식을 사줄 것"이라며 CIBC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하이닉스와 현대증권은 현대중공업에 "어떤 부담도 주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줬고, 동시에 이익치 전 현대증권 사장은 하이닉스에게도 '주식매매와 관련해 어떤 손해도 입히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전달했다.
하이닉스와 현대증권의 기대와 달리 국민투신 주식가치는 하락했고 CIBC는 2000년 주저 없이 풋옵션을 행사했다. 현대중공업은 계약조건대로 CIBC로부터 국민투신 주식을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천억원대 손해를 보게 된 현대중공업은 현대증권과 하이닉스를 상대로 외화대납금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현대증권은 991억원을, 하이닉스는 2118억원을 현대중공업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하이닉스는 "이 전 회장으로부터 '주식매각과 관련한 손실을 모두 보장해 주겠다'는 각서를 받은 만큼 현대증권에게는 손실액 2118억여원을 전액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2009년 9월 약정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현대증권은 주식매매 계약체결을 주선한 것에 불과하다"며 "설사 현대증권이 손실발생시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주채무자가 아닌 보증인에 불과하므로 책임의 범위는 전체 손실이 아닌 일부로 한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뉴시스>
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