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발전, 지하화 찬성 서명 받으러 주민들 밥 사주고, 기념품 주고...
[매일일보 = 변주리 기자] 당인리발전소(서울화력발전소)의 지하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중부발전(주)이 지식경제부 공무원 및 서울시의원 등을 대상으로 막대한 경비를 들여 유럽 3개국 해외 견학을 제공한 사실이 <매일일보>의 단독 취재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발전소 지하화 홍보에 정부 예산이 물쓰듯 사용되고 있었으며, 주민대책위 등 지역 주민들은 “지하화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외유성 해외 견학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주민공청회 직전에 공무원·시의원 등 유럽 3개국 견학
지하화 찬성서명 받으러 주민 상대 ‘접대성 견학’ 추진
대책위 “반대여론 무마용, 향응” 주장…관계기관 내사 중
1930년 건립된 당인리발전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력발전소다. 무연탄을 사용하는 1~3호기는 이미 철거된 지 오래며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4,5기의 수명은 2012년까지다. 현재 당인리발전소는 마포구 일대 난방열을 공급하고 있다. 발전소를 관리하고 있는 중부발전은 한국전력공사(한전) 자회사다.
당인리발전소 폐쇄 및 이전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이 대통령은 당선자와 후보 시절 발전소 이전과 문화공간(문화창작발전소) 조성을 약속했다.
또 강용석 의원(무소속·마포을)이 2008년 국회의원에 당선될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업으로, 강 의원이 의정활동 초반기에 야심차게 추진했던 사안이다.
문화창작발전소 사업은 당인리발전소의 수명이 다하는 2012년 이전에 발전소를 옮기고 그 자리에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리모델링) 같은 문화시설을 만든다는 것.
지경부와 마포구는 2008년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이전 부지를 찾았지만, 유력 이전부지로 거론되던 경기도 고양시 일대가 해당 지자체의 반발로 무산되면서 문화창작발전소 사업도 사실상 백지화 됐다.
결국 최근 들어 지경부와 중부발전은 발전소를 옮기는 대신 지하화하기로 결정, 발전소 자리의 지하에 100만 ㎾급 대형 ‘지하 화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지역 주민들은 '폭발 위험'을 우려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당인리발전소 인근 주민 16000여명은 ‘발전소 지하화 반대 청원’을 관계기관에 제출했으며, 주민대책위를 조직해 삭발투쟁 등 수차례 항의 농성을 벌였다.
주민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근 주민 성 모씨는 “1만여평 규모의 LNG(고압천연가스) 발전 시설을 주거지 한복판에 건립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며 “한마디로 화약고를 안고 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삭발투쟁, 의원들은 해외관광(?)
주민들 “향응 접대 아니면 뭐겠느냐”
이처럼 반대여론이 들끊자 중부발전은 발전소지하화를 위한 주민공청회가 열리기 직전인 지난 4월초 지식경제부 공무원 및 서울시의원 등을 대상으로 해외 발전소 견학을 시행했다.
<매일일보>이 주민 제보를 받고 당인리발전소 인근 지역(마포구)의 시의원, 구의원들 전부를 취재한 결과, 시의원 2명, 주민자치위원장 3명,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 사무관 A씨, 중부발전 직원 등 총 8명이 4월12일부터 17일까지 5박6일 일정으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템스 강변의 폐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다시 꾸민 시설)를 비롯, 이탈리아, 독일 등지의 발전소 시설을 둘러보고 온 것으로 확인됐다.
항공편과 숙식 등 일체의 체류경비는 중부발전 측에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시의원과 구의원들은 “(발전소측으로부터) 해외견학을 권유 받았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아 거절했다”고 밝혔다. 모 시의원은 해외로 출발하기 전날 황급히 중부발전 측에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이번 해외 견학에 참여한 A시의원은 “당인리발전소 문제가 지역 현안으로 떠올라 있는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간 것일 뿐 외유나 관광 목적은 절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개인 사비로 가지 않고 중부발전의 후원을 받아 간 것은 잘못한 것 같다”고 시인했다.
지경부로부터 정식 출장을 승인받아 정부 재정으로 다녀왔다고 밝힌 지경부 공무원은 “당인리발전소 지하화 문제가 쟁점화 된 상황에서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설명도 들을 겸 다녀왔다”고 말했다.
<매일일보>은 중부발전 측에 해외견학프로그램, 소요경비 등 세부적인 내용을 알려줄 것을 질의서로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답변이 없는 상태다.
중부발전 측은 <매일일보>과의 전화 통화에서 “주민대표들에게 도심 한가운데 건설된 발전소들의 친화적인 모습을 해외 사례를 통해 보여주려 했던 행사였으며, 공청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또 발전소 측은 “공청회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잘못이지만, 외유나 향응의 성격은 절대 아니다”며 주민들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을 일축했다.
반면 주민들은 “지경부와 중부발전의 지하화 방침이 해외 견학 이후 확정됐다”며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또 발전소 지하화가 지역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 대표들이 중부발전측이 제공한 경비로 해외 견학을 다녀왔다는 점에 분개하고 있다.
당인리발전소 주민대책위원회 이봉수 위원장은 “지하화를 추진하려는 중부발전이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지경부 공무원과 시의원을 대상으로 향응을 제공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해외시찰 비공개로 진행
특히 <매일일보> 취재 결과 해외 견학이 공식적으로 진행된 행사가 아니라는 점도 의혹을 더하고 있다.
이번 해외 견학과 관련해 중부발전측은 “공식적으로 진행된 일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취재 결과 중부발전은 비공식적 라인을 통해 구의원과 시의원들을 대상으로 해외 견학을 초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부발전으로부터 해외견학 제안을 받았다는 A 시의원은 “동료 의원이 사석에서 넌지시 알려 왔다”며 “중부발전이 경비를 제공하는 것을 알고 책임이 막중한 의원으로서 개인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C 구의원 역시 “비공식적으로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며 “얼마 전 지역 주민들이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상당히 분노해 당인리발전소와 서울시의회 앞에서 투쟁을 벌이며 소동을 피우기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C 구의원은 또 “해외 견학은 한 명당 최소 5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데 중부발전측에서 그냥 보내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중부발전이 지하화 재추진을 시도하려했던) 때가 맞물려 있는 만큼 시의원과 구의원 등을 대상으로 해외 견학을 주관한 데에는 분명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발전소견학 구실로 ‘찬성’ 서명 유도
한편 일부 주민들은 “중부발전이 발전소 지하화 찬성 여론을 유도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에게 ‘접대성 견학’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중부발전은 최근 수년간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양양발전소와 보령발전소 견학 행사를 진행해 왔는데, 최근에는 참여 주민들에게 고가의 기념품을 제공해 지하화 찬성 서명을 받아냈다는 것.
이봉수 대책위원장은 “주민들이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견학을 가는 주민들 대부분은 노인정에 있는 노인분들인데 그분들이 무엇을 알고 찬성 서명을 했겠느냐”며 “점심도 사주고 선물도 주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3월 경에 보령발전소 견학 행사에 참여했다는 이모씨(신수동·65)는 “발전소에 가서 동영상 두어 개 정도 보고, 점심으로 회를 사주기에 먹고 왔다”며 “선물로 비누와 홍삼 액기스도 줬다”고 밝혔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당인리발전소가 위치한 상수동·합정동과는 상당 거리가 떨어져 사실상 발전소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지역의 주민들까지 발전소 측이 제공하는 ‘견학프로그램’을 다녀온 사실도 확인됐다.
발전소 예산은 ‘눈먼 돈’?
실례로, 지난 16일 마포구 대흥동의 통반장, 주민자치위원 등 40여명은 발전소 측의 주관으로 강원도 양양발전소를 견학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흥동은 발전소 지역과는 상당히 떨어진 위치다.
이처럼 무리한 견학프로그램이 마포구 곳곳에서 시행되자, 해당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 향응 제공 의혹 사례가 접수됐으며, 해외시찰 등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이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법 위반 의혹은 발전소의 견학프로그램에 해당 지역 구의원과 지방선거 출마예정자 등이 관여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발전소 측은 “마포구 전체를 관련 지역으로 보기에 대흥동도 (견학프로그램에) 참가시켰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며 “해당 발전소 마다 견학자들에게 제공되는 기념품이 있는데, 보령에는 머드가 유명해 머드 비누가 제공됐던 것이며, 홍삼 액기스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고 기념품은 2만원 이상이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주민 서모씨(53)는 “발전소 돈(재정)은 눈먼 돈이라는 얘기가 나돌면서, 모 구의원이 자기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발전소 측에 견학을 요청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정부기업이라는 중부발전이 부동산 시행사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중부발전 예산) 사용내역 등을 낱낱이 밝혀 혈세 낭비를 막아야하며, 연루된 시의원, 구의원들은 주민들 앞에 분명하게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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