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방화 미스테리 3가지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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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방화 미스테리 3가지 추적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02.15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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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하필 특검 때 사건 터졌나, 누리꾼 중심 배후조종설 솔솔~
2.  불길 속에서 일회용 라이터 ‘굳건’, 알루미늄 사다리도 ‘멀쩡’ 
3.  혐의 ‘있다’ VS ‘없다’ 재번복…5시간 동안 무슨 일 벌어졌나

[매일일보닷컴] 지난 10일 저녁 이후, 600년간 웅장한 모습을 자랑해오던 국보 1호 숭례문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숭례문이 있던 자리엔 숯덩이처럼 시커멓게 그을린 잔해만이 남아있다.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숭례문 앞엔 헌화의 물결이 이어졌고, 국보 1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에 많은 시민들은 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숭례문 화재사건은 아직 원형복구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피의자 채모씨(69)가 지난 14일 구속되면서 우선은 일단락된 듯 보인다. 그러나 숭례문 전체가 타들어가는 고열 속에서도 증거품인 일회용 라이터와 알루미늄 사다리가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점, 채씨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밝힌 지 불과 5시간 만에 채씨가 방화범이라고 재발표된 점 등 갖가지 의혹들이 난무한 상태다. 거기다 일각에서는 “숭례문 방화는 정치적관심사를 돌리기 위한 물타기 작전이었다”는 다소 ‘신빙성 없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 지난 10일 저녁 이후, 600년간 웅장한 모습을 자랑해오던 국보 1호 숭례문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사진=류세나 기자
지난 10일 밤 9시께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이 붙었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다행히(?) 연기만 자욱한 정도라 일은 쉽사리 정리될 듯 보였다. 그러나 자정을 넘긴 11일 새벽 2시경 숭례문은 뼈대만 남긴 채 시커먼 형상을 드러냈다.

구정연휴 마지막 날 발생한 이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때문에 화재 원인과 방화범은 누구일지, 또 어떠한 이유로 국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쳤는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사건은 채씨가 붙잡힘으로써 일단락되는 듯 보이고 있지만 세간의 관심은 이번 사건으로 수혜를 보게 된 당사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화재방화시점이 삼성특검과 이명박 BBK특검의 시점과 맞물린다는 점을 감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삼성그룹이 최대 수혜자일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성인남녀 서너 명이 모이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슈 중 하나가 국내 정치∙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삼성특검과 차기정부의 BBK특검 이야기였던 게 사실. 그러나 숭례문이 전소되면서 국민의 눈과 귀는 모두 삼성특검과 이 당선인의 BBK 연루여부가 아닌 숭례문 화재로 초점이 맞춰졌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늘 갖은 의혹과 다양한 시나리오가 불거지는 것처럼 이번 숭례문 화재사건의 핵심 역시 ‘시기적인 미묘함’ 때문에 여러 가지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다.실제로 이번 화재사건으로 삼성특검과 이명박 특검 뉴스의 언론 노출 횟수와 비중은 감소했다. 세간의 이목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데 충분한 뉴스거리가 된 셈이다. 또 국보 1호 손실이라는 큰 사건으로 현 정부가 특검수사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가정 속에서 이 두 특검의 대상자는 사실상 최대 수혜자로 거론되고 있다.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이 당선자는 현 정권의 제도와 법을 뜯어 고칠 수 있는 명분까지 얻게 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은 지난 11일 화재현장을 찾아 “인수위가 국가재난 관리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검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중에 이런 일을 또 한번 겪었다”면서 “문화재 관리와 보존에 대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며 이를 집행하는 정책 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시기적 미묘함

피의자 채모씨가 범행 후 보인 행동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보인다. 채씨는 CCTV에도 잡히지 않을 만큼 치밀한 각도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자택인 강화도 마을회관에서 경찰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30여분 만에 범행을 시인했다. 이와 관련 당시 채씨를 쫓았던 한 경찰관계자는 “우리도 놀랄 만큼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바로 이 부분이다. 채씨는 2002년 무렵 토지보상금으로 인해 품었던 사회적 불만을 왜 2008년에 와서 터뜨린 것일까.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면서까지 대형사건을 일으킬 만큼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더라면 지난 6년간 조용히 지낼 수 있었을까. 물론 채씨는 이미 지난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 출입문에 불을 저질러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는 방화전력자다. 그러나 지난 12일 경찰이 공개한 채씨의 자필편지에 따르면 “창경궁에 놀러 갔다 불난 곳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나를 방화범으로 몰았다” “증거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보여주지 않았다” “변호사가 수차례 ‘거짓 자백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했다”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자신은 결백한데 죄를 뒤집어썼다는 얘기다. 채씨의 편지내용이 무조건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채씨는 무엇 때문에 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 방화를 결심하게 된 것일까. 이런 뒤늦은(?) 결심 덕분에 일각에서는 ‘배후조정설’까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은(?) 증거물들

▲ 국보1호 숭례문은 ‘출입금지’. /사진=류세나 기자
이외에도 경찰수사 결과 풀리지 않는 갖가지 의혹들이 있다.

우선 숭례문 2층 계단 앞에서 발견된 피의자 채씨가 사용한 일회용 라이터 2점. 2층 누각 전체를 휩싼 화마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라이터가 손상되지 않은 채 발견됐다. 이 라이터는 처음 불길을 잡으러 숭례문 2층으로 올라갔던 한 소방대원에 의해 처음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소방대원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라이터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경찰에 밝혔다. 이 소방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라이터는 불길이 치솟기 시작할 때부터 불이 꺼질 때까지 화재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라이터는 원형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재진압 후 누군가가 그 곳에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또 현장에서는 채씨가 범행에 사용했다고 증언한 2단 알루미늄 사다리가 발견됐다. 그러나 이 역시 그을린 흔적조차 없었으며 현장의 흙 정도가 묻어 있던 게 다였다.피의자 채씨를 연행, 조사하는 과정에서 서울지방경찰청과 서울 남대문 경찰서의 엇갈린 진술도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청은 지난 11일 유력 용의자로 채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지만 당시 김영수 남대문서장은 “혐의가 없음이 드러나 채씨를 용의자 선상에서 배제해 풀어줬다”는 엇갈린 주장을 했다. 그러나 당시 채씨는 서울청에서 조사중이었고 채씨에겐 혐의가 없다던 남대문서의 주장과 달리 약 5시간 후인 12일 새벽 6시경, 채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보도됐다. 풀어줬다던 용의자가 5시간만에 범인이 된 순간이었다.채씨가 피의자로 밝혀지자 김 서장은 “당시 확실한 증거도 없고 채씨가 유력용의자라는 보고를 받지 못해 채씨가 유력 용의자임을 밝히지 못했다”고 애둘러 변명했다. 수사중임에도 불구하고 무혐의라고 단정 지어 언론에 발설하는 일은 국가 중대사안을 다루고 있는 수사본부의 수장으로서 범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채씨가 조사받았던 12일 오전 1시에서 6시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네티즌들은 사이에서는 숭례문 화재와 연관이 있는 전·현직 서울시장, 서울시 중구청장, 문화재청장, 소방방재청장 등 5명의 관리들을 일컬어 ‘숭례 5적(崇禮 五敵)’이라 부르며 이들을 처벌하자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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