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충성스런 매파는 이해되나, 경찰청장으로서는 자격 없다”
민중의 지팡이냐, 정권의 지팡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 중?
[매일일보닷컴] “폭력시민이라 강경진압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난 2일 쇠고기 촛불집회에 참석한 일반 시민들을 강경 진압한 이유에 대해 “폭력 시민이었기 때문”이라고 발언했다. 어 청장은 이날 경찰청을 방문한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비폭력 시위를 벌인 시민들을 과잉 진압했다고 항의하자, “무저항 비폭력 시민이 아니라 폭력 시민이었다”며 반발했다. 시민들은 어 청장이 직접 나서서 과잉진압을 두둔한 것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국 1700여 개 시민ㆍ사회단체로 구성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다음 날인 3일 기자회견을 갖고 어청수 경찰청장을 형사고발했다.
정치권도 뿔나긴 마찬가지. 박승흡 민노당 대변인은 어청수 청장의 발언과 관련 “명백한 도발”이라며 “그는 물대포로 평화로운 시위대의 이빨을 부러뜨렸고 고막을 잘려나가게 했고 팔과 다리를 부러뜨린 당사자”라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어 청장은 백골단을 21세기 흑골단으로 부활시켰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면서 “경찰의 군홧발에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자유가 무참히 짓밟혔다”고 꼬집었다. 박 대변인은 이어 “충성스러운 매파가 되어서 이명박 대통령을 엄호하려는 충정은 이해되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경찰청장으로서는 자격이 없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폭력시민에 대한 진압이었을 뿐’이라며 과잉진압을 합리화하는 듯한 발언을 내뱉은 어청수 총장. 그는 과연 ‘어떤 경찰’일까. ‘민중의 지팡이’일까, 아니면 일각의 우려대로 ‘정부의 지팡이’일까.
사실 이 같은 폭력시민(?)에 대한 폭력진압은 이미 예견됐다고 볼 수 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난 달 26일 “촛불시위는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지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주동자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밝혔고,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경찰의 대국민 ‘겁주기’ 엄포 발언은 우려대로 현실화됐다. 평화롭게 촛불문화제에 참석했으나 이른바 ‘토끼몰이’를 통해 비무장인 시민들을 속수무책으로 넘어졌고, 경찰들은 곧바로 군홧발을 이용, 무고한 시민들의 머리를 수차례 가격해 피를 흘리게 했다.
또 곡선을 그리며 살포해야 하는 물대포를 시민들의 눈과 귀를 향해 직사해, 시력을 상실시키는 등 수십 명의 부상자를 양산시켰던 악몽의 지난 1일과 2일의 ‘총책임자’가 바로 어청수 경찰총장이었다.
이런 와중에 그의 국민의 뜻과 어긋나는 ‘황당스런’ 발언까지 언론에 공개되자, 그가 과연 과거에 어떤 경찰이었는지를 두고 시민들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분석하면 어청수 경찰청장은 최근 몇 년간 논란이 됐던 경찰의 폭력성이 문제가 되는 현장을 늘 진두지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청수 청장이 이번 평화적 촛불집회를 마음대로 ‘정치집회’로 간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발기류 확산의 기를 미리 꺾어보겠다는 강경 의지를 내비쳤던 것처럼, 그는 과거에도 지금의 그 것과 똑같은 행동을 보여줬던 것. 어청수 총장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경찰 고위직을 역임하며 강경 진압의 진수를 여러 차례 보여줬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강경진압
유명한 첫 번째 일화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회다.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2006년 5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5.18정신계승! 군부대 철수!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전면 재검토! 평화농사 실현 범국민대회’를 7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적으로 진행했으나 경찰은 이들은 원천봉쇄하고, 교회 경내까지 무단 난입해 무조건 연행했으며 심지어 예배에 참석하려는 신도까지 무차별 연행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범국민대회를 치르려던 도두리 마을 주민들의 통행도 가로막고, 도두리에서 외부로 통하는 도로에도 철조망을 설치해 아예 버스조차 다니지도 못하게 했으며, 평택에서 대추리와 도두리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집회 참가자를 향해 곤봉과 방패를 휘둘러 다수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어청수 경찰총장은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다.
어청수 경찰총장은 앞서 2005년 부산경찰청장을 역임했을 때도 현장에 직접 출동해 지휘하는 ‘실무형 지장(智將)’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줬다고 적혀있다. 당시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경비와 경호를 완벽히 수행해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 총장은 당시 컨테이너박스 10여 개를 동원해, APEC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봉쇄했는데 당시에도 지난 1일처럼 ‘물대포’를 등장시켜 집회 참석자들에게 쏘며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30여 명은 큰 부상을 입었으며 전경 3명도 컨테이너박스에서 떨어지는 등 어청수 한 사람을 통해 상당수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야 했다. 한마디로 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청수가 가는 곳에 피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시민의 집회를 진압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어청수 총장이 ‘보수정권’에서 그 끼를 본격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마저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경남 진주 출신인 어 청장은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 청장은 강남경찰서 정보과장이던 1992년, 민자당 비례대표 의원이던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한 1996년에는 종로서 정보과장이었고,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에는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장으로서 대통령과 연을 이어갔다. 지난 2000년 은평경찰서장을 역임할 때는 당시 은평을 지역구의 이재오 의원과 알게 되는 등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어청수 경찰청장은 결과적으로 신ㆍ구 정권을 아우르는 실세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잘나가고, 현재도 잘나갔다면, 앞으로도 그는 ‘파워’를 지닌 현 정권의 ‘실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정치지향적’ 성향 뛰어나네~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데는 그의 ‘정치지향적인’ 성향이 한 몫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07년 6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으로 낙마한 홍영기 전 청장의 후임으로 서울경찰청장을 맡게 된 그는 현 이명박 보수정부의 보수적 사고와 달리, 당시 진보적 참여정부의 개혁적 성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장 재임 당시 기자실 폐쇄를 주도했기 때문.
그러나 그는 올 초 경찰청장 청문회 때, 이 사건에 대해 문제점을 인정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자 180도 변신을 시도했던 셈이다.
어쨌든 어청수 청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을 전후로, 이명박 정부를 위한 ‘준비된 청장’으로서의 진면목을 ‘강경진압’이라는 실천과제를 통해 여과 없이 보여줬다.
시민을 불법단체로 규정한 어 청장은 그러나 더 이상 ‘아군인’ 이명박 대통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등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0%대.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 시민들은 연일 촛불시위를 통해 “어청수는 퇴진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강경진압’의 1인자로서의 빼어난(?) ‘실력’과 정권실세들과의 인연이라는 ‘운’ 속에서 승승장구 중인 그가 ‘미국산 쇠고기’로 성난 민심들의 잇따른 집회 국면에서 앞으로 현 정부의 방어자로 ‘올인’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릴지, 아니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더욱 매진할 지, 세간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물론 이 또한 어 청장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 될 것이다. 이는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어깨에 짊어질 또 다른 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