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국민이 반대하는 사안들 추진한다면 국민소환운동”
전남 ‘대통령에 대한 신뢰 한없이 추락…사회적 동요 움직임’
충청 “대통령 마인드에 문제…나라경영을 기업경영처럼 오판”
부산 “CEO대통령 뽑으면 나라살림 잘 챙길 것이라 믿었는데”
[매일일보닷컴] 한국 사회에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밖으로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국내경제에 적신호가 켜졌고, 안으로는 광우병 파동에서 비롯된 반정부 여론이 들끓고 있다.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던 시민들은 최근 들어 ‘정권 퇴진 운동’까지 전개하고 나설 기미를 보이면서 위기론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자리 수로 하락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한미 쇠고기 협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달 보름이 넘게 지속된 촛불집회 여파로 민심이반 현상이 가속화되는 증거라는 지적이다.
촛불집회 현장 근처에서 노점상을 하는 기봉자씨(56)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오히려 장사는 더 안되고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속은 기분”이라고 하소연했다. 일용직 노동자라고 밝힌 박모씨(62)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이 정말 큰 실수”라며 “나도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정말 한심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건우 아빠(36ㆍ부천시)라는 시민은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모든 정책을 밀어 붙였다”면서 “일단 쇠고기 재협상이 되지 않으면 정권퇴진 운동까지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민주노동당 당원이라고 밝힌 손민남씨(34)는 “반정부 운동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고, 비정규직 근로자인 박오자씨(33)는 “이명박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없다면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의 ‘뿔난’ 민심을 들어봤다.
◇ 수도권 “대통령 ‘원맨쇼’ 정부” = “설득과 대화가 아닌 기업 CEO식 밀어붙이기가 일을 더 키웠죠.”성남의 한 IT업체에 근무하는 김현우씨(38)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너무 가볍게 여겨 화를 자초했다고 평가했다.
“중ㆍ고등학생들이 처음 촛불집회에 나섰을 때 정부에서는 불만을 품은 일부 과격분자, 멋모르고 날뛰는 일부 청소년쯤으로 치부했잖아요. 나중에는 배후에 누가 있을 것이라면서 양초를 누구 돈으로 샀는지 파악까지 한다는데 참 어이가 없더라고요.” 김씨는 ‘배후설’ 얘기를 듣고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나섰는데 집회 참석자들에게 간식용 김밥을 돌리던데 거기에 ‘우리가 여러분의 배후 세력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더라구요. 한참을 웃었습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배후설을 들먹이는지.”
수원에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박경식씨(59)는 요즘 친구들 얼굴 보기가 민망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자며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유세 아닌 유세까지 했었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들이 전화해서 이명박 지지하더니 나라 꼴이 이게 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지죠. 나라고 이렇게 될줄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정국을 어수선하게 만든 책임이 있는 것 같아 대꾸도 못하고 미안하다고만 말합니다.”
촛불집회 이후 민심 이반과 현 정부의 표류는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화성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최모씨(53)는 “대통령의 원맨쇼 정부같아 보입니다. 대통령 혼자 모든 일을 다하고. 여당이 지금처럼 무기력하게 보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독재라고 하긴 그렇지만 70~80년대하고 큰 차이를 못느끼겠습니다. 모든 것을 본인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생각,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이랄까.”
두 아이의 엄마이자 회사원인 김윤경씨(42)는 “현 정부가 특정인을 위한 정책만을 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부자, 고소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잖아요.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는 우리 일상 경제와는 동떨어진 특정인만의 경제라는 생각을 해요. 한나라당은 18대 국회 열자마자 종합부동산세 개정안부터 들고 나왔잖아요. 일반 국민은 생업에 지장이 있을 만큼 힘든데, 부동산 문제에서 보듯이 집권하고 있는 그들은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잖아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죠.”
현 정부의 민심 이반을 되돌리는 것은 앞으로의 대통령 정치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 경기도민 다수의 입장이다. 김현우씨는 대통령이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장관 한두 명 자른다고 될 일이 아니죠. 정부가 직접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문제를 풀려는 자세를 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통령은 그동안 했던 일이 실수가 아니라는 맹신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이 과오를 인정하고 앞으로는 적게 실수하려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경기지역 시민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해 강경 입장을 나타냈다. 수원환경운동연합 윤은상 사무국장은 국민소환운동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은 공공부분 민영화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광우병, 대운하 등에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이 반대하면 대운하는 안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당정회의에서는 정치적으로 후순위로 늦춰 놓았을 뿐이다. 광우병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를 그대로 추진한다면 국민소환운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은 모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대통령을 소환하는 것을 추진할 것입니다.”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서형택 수원시지부장은 현 정부가 민심과 동떨어진 형태로 계속 나간다면 정권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국민과 뜻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의료보험.공기업 민영화, 물 사유화, 교육 자율화, 대운하 반대와 공영방송 사수 등 민심과 관련한 5대 의제를 수용하지 않으면 행정거부와 함께 양심선언 등을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민심과 동떨어진 형태로 계속 나간다면 행정거부, 양심선언 등에 이어 정권 퇴출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 광주전남 “앞으로 5년이 더 걱정” = 이명박 정부에 대한 광주ㆍ전남지역민들의 민심이반 현상은 심각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문을 계기로 일기 시작한 지역민들의 분노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고 경기불안과 사회적 동요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장바구니 무게에 버거워하는 주부들의 한숨소리는 가정마다 가득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경제의 미래조차 기약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민심 불안은 충분히 예견돼 있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더구나 심각한 것은 이런 국가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무능에 있다. 해법은 고사하고 민심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우를 되풀이하고 있다. 현 대한민국의 국가지도력은 표류중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정찬호 교육선전국장(43)은 “친기업 정책으로 일관된 한국 자본주의의 최대 위기 상황으로, 정부는 칼끝에서 춤을 추는 형국”이라며 “촛불과 파업으로 이어진 현 정국은 FTA도입 이후, 수돗물과 의료보험 등의 민영화 이후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상석 ‘시민이 만드는 밝은세상’ 사무처장(46)은 “대의민주주의는 사실상 끝났다”며 “민의와 정치권의 간극과 온도차가 워낙 큰데다 민의가 국가 지도부에 전달되는 시간 또한 너무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
전교조광주지부 박재성 지부장(53)은 “4.15 교육자율화 조치로 대표되는 공교육 파탄 정책을 즉각 철회하는 길만이 교육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잠재우는 몇 안되는 지름길”이라고 진단했다.
자영업자 박명화씨(38.여)는 “정부가 회사원, 노동자, 농민, 학생 등 국민 각계 각층의 의식의 좌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이토록 빨리 표출될 줄은 몰랐다. 걱정이다”고 말했다.
◇ 충청 “나라경영을 기업으로 오판” = 충북지역은 참여정부 시절 추진됐던 세종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지역균형발전 정책 등이 혼란을 겪으면서 새 정부에 걸었던 기대만큼이나 실망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인 현재의 국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싸워 이기려 하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하다.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안이하게 내부 권력투쟁의 모습을 표출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과 잘못된 정부와 여당을 제대로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에 대한 비난도 거세다.
김성구씨(41ㆍ회사원)는 “지난 대선 때 MB를 지지했던 사람이다. 당시는 나름대로 경제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실망이다. 미국산 쇠고기수입 문제 등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고 있는 데에는 대통령의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마치 나라경영을 기업경영처럼 오판한데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정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덤프트럭 운전사 이모씨(37)는 “민주노총 조합원은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공감이 된다”면서 “운행하면 할수록 손해만 쌓이는데 운행하면 뭐하나, 이제는 정부의 안이한 대책에 울화통이 터진다. 생계도 막막하다. 하루 빨리 현실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위필 전국한우협회 충북지회장(42)은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하는 바람에 우리 한우농가 대부분이 도산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등 농촌을 죽이는 정책을 선택하고 있다”며 “정부는 형식적인 축산농가 지원책 말고 실질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건설업자 정모씨(48.단양군)는 “새 정부 들어 정부나 지자체 모두 대형사업만 하려고 해 영세 건설업자들의 일감이 크게 줄었다. 건설 물량도 없는데다 자재 값마저 천정부지로 올라 업을 유지해야 할지 스스로 묻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운송사업자나 장비업자가 아니라 건설업자다. 소형공사도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 정태호씨(40ㆍ청주시 사직동)는 “지난 대선 때 처음으로 참정권을 포기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CEO출신이란 태생적인 면을 고려할 때 현재의 혼란은 예상됐던 일이다. 과정(여론의 지지)을 중시하는 정치인과 달리 기업인 출신 리더는 결과를 중시한다. 결과가 낙관적이면 여론이 뒤따라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한반도 대운하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건도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던)청계천 복원사업처럼 ‘결국 잘 될 것이다’는 낙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총체적 난국이지만 제대로 풀어갈 것이란 기대는 갖고 있다. 당장 탄핵해야 한다는 일부 여론에 대해서는 동조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무원김모씨(53)는 “촛불집회에 나가는 시민들을 이해할 수 있다. 정부가 소통부재를 일으켜 이런 혼란을 야기 시킨 것에 대해서는 함께 책임을 느낀다. 그런데 시위가 갈수록 정권퇴진이나 쇠고기 협상과 전혀 관계없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대처를 차분히 지켜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부산 “CEO출신 뽑았더니 효율성만 따져” = “세상이 어찌 돼 가노.” 연일 잇따르는 촛불집회에다 화물노조 파업으로 도심을 운행하던 컨테이너트럭 운행이 뚝 끊기자 부산시민들의 표정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화물노조원 김모씨(48)는 “부산서 서울까지 한탕 해도 기름값을 제외하면 적자를 보는데 차라리 차를 불태워 버리는 게 낫지 운행하면 뭣 하노”라는 푸념과 함께 소주잔을 벌컥 들이켰다. 또 다른 일행은 “CEO대통령 뽑으면 나라살림 잘 챙길 것이라 믿었는데 투표용지 인주도 마르기 전에 나라가 엎어지게 됐다”며 불안한 심기를 드러냈다.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국내최대 항만도시 부산항이 물류대란을 겪고 있다. 이번 파업사태는 예고된 것인데도 정부당국과 부두 운영사와 운송사들이 안이한 대처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파업을 앞둔 지난 10일 부산해양항만청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당국은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해도 부산항의 컨테이너 수송 차질은 평소 1일 물동량의 28%인 하루 7870TEU(20피트 컨테이너)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일반화물 수송도 화물연대 가입차량이 전체 차량의 3.4%에 불과해 수송차질은 미미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부산시도 컨테이너 차량과 일반 카고 등 1만5600여대의 등록차량 중 화물연대 소속은 컨테이너 차량 1000대와 일반 카고 800대 등 1800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파업 나흘째인 16일에는 컨테이너를 쌓아둘 야적장이 모자라 항만기능이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다. 부산항은 이날 화물 반출입량이 보통 때의 27% 수준에 그치고 컨테이너 부두의 장치율도 정상적인 화물처리가 가능한 한계치인 80%를 훨씬 웃도는 85.1%를 기록, 한계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날 오전 감만부두(BGCT)의 경우 장치율이 99.2%, 신감만부두 91.0%, 중앙부두 100% 등을 기록하는 등 북항의 주요 부두가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또 주요 컨테이너 부두에서 선적이 취소되는 화물 비율이 30%선을 넘어 수출화물 운송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컨테이너 차량의 운송률도 21.9%에 그쳐 화물 반출입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24척의 컨테이너 선박이 부산항에 입항할 예정이어서 컨테이너의 하역과 선적을 못할 상황까지 우려되고 있다.
컨테이너 화물의 부두 밖 장거리운송은 전면 중단됐고, 군 투입 차량과 부두내에서만 이동 가능한 대형 야드트랙터 170여대를 동원해도 컨테이너 화물의 부두간 이동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대선 후 지난 1월에는 영어교육과 대운하문제, 2월에는 인사정책, 3월에는 공천파동 등 잇따른 인수위와 집권당의 시행착오로 빚어진 민심의 이반 현상은 이명박정부의 정권 교체론까지 들먹이고 있다.
서너 차례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회사원 박모씨(36)는 “다양한 처지에 놓인 집회 참가자들이 이제는 문제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해결 방안도 제시할 때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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