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김경탁 기자] 이명박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을 업고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야권이 유리할 것으로 전망됐던 4·11 총선이 예상 밖의 새누리당 압승으로 끝남에 따라 차기 대권경쟁구도에도 소폭 조정이 예상된다. 안풍과 함께 사그라들었던 박근혜 대세론이 부활했고, 같은 이유로 안철수 대안론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야권의 유력대선주자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낙동강벨트’에 대한 적극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김해 1석, 부산 2석에 불과한 초라한 성적을 거뒀지만 과거 어느때보다 많은 접전지역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가능성’과 ‘희망’의 씨앗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돌아온 ‘선거의 여왕’…박근혜 화려한 부활
문재인,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가능성’ 확인
안철수, 알쏭달쏭 정치 행보 계속…대안론도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지역구에서 127석을 획득, 비례대표 25석을 합해 모두 152석을 차지했다. 민주통합당은 지역구에서 106석, 비례대표 21석을 합해 총 127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통합진보당은 지역구 7석과 비례대표 6석으로 13석을 얻었다. 자유선진당은 지역구 3석과 비례대표 2석을 차지해 5명의 당선자를 냈다. 무소속은 3명이 당선됐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새누리당 약진, 민주당 패배, 통합진보당 선전, 선진당 몰락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민생각, 진보신당 등 군소 정당들은 별다른 이변을 일으키지 못한 채 단 1석도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당투표에서도 1% 내외의 득표로 당의 존립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 새누리당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은 ‘붕대투혼’을 발휘하며 전국을 누볐다. | ||
19대 총선 결과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두며 원내 1당의 지위를 다시 확보한 것은 ‘박근혜 효과’가 이번에도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은 이번 총선을 진두지휘하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이명박 대통령 측근 비리와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 등 각종 악재로 바닥까지 추락한 당의 위상과 이미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그는 선거 정국에 돌입한 후 전국 유세를 다니며 후보 지원에 앞장섰다. 그 결과 당초 90석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던 새누리당의 의석수는 과반에 이르는 압승을 거뒀다. 새누리당은 이에따라 향후 박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대선 체제에 본격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위원장의 활약은 부산 등 PK지역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민주통합당에서 부산 사상구의 문재인, 북구·강서을의 문성근, 진구을의 김정길 등 이른바 ‘문-성-길(문재인·문성근·김정길)’ 트리오를 배치하면서 이번 총선의 최대 승부처로 떠올랐다.
경남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김해을)을 비롯, 송인배(양산)·김성진(창원·마산 합포)·조수정(사천) 후보 등 참여정부 핵심참모들이 출마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이에 맞서 ‘문성길 트리오’의 대항마로 27세 정치신인 손수조(부산 사상) 후보, 김도읍(부산 북강서을) 전 부산지검 검사, 이헌승(부산 진을) 전 부산광역시 대외협력보좌관을 각각 내세웠다. 경남과 TK(대구·경북)지역 주요 선거구에는 친박계(친박근혜) 주자들을 전면에 포진시켰다.
이로써 PK지역은 물론, 영남권역 전체가 ‘친박근혜계’ 대 ‘친노무현계’가 맞붙는 구도로 귀결됐다. 더구나 이곳은 양 진영의 대선주자인 ‘박근혜 대 문재인’ 격돌 구도가 형성되면서 이번 총선이 12월 대선의 전초전 성격으로 발전했다.
‘PK전선’을 넘은 야권이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위원장의 고향인 TK(대구·경북)까지 치고 올라올 경우 대선판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박 위원장의 ‘부산행’을 재촉했다.
박 위원장은 공식 선거운동기간동안 무려 5차례나 부산을 방문했다. ‘7년만의 외박’으로 불리는 선거 막판 ‘1박2일 지원유세’는 박 위원장이 새삼 ‘선거의 여왕’임을 각인시키는 유세였다. 박 위원장은 ‘단 한 곳도 뚫려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가는 곳마다 천명했다. 부산·경남(PK)지역을 사수해야한다는 게 박 위원장의 지상과제였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민주당에게 부산에서 단 2석을 내주는데 그쳤다. 나머지 모든 선거구에 새누리당 깃발이 꽂혔다. 사실상 ‘박근혜의 승리’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박 위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향후 대선 행보에도 더욱 힘을 받게 됐다. 박근혜 단독 선거대책위원장의 '1인 체제'에서 거둔 이번 승리를 통해 새누리당은 박 위원장의 장악력이 강화되고 더욱 수월하게 대선체제를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민심으로부터 이반된 현 정부와는 확실한 선긋기에 나서면서, 쇄신 이미지를 전면에 부각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1일 밤 부산 사상구 문재인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문 후보가 당선이 유력해지자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
야권의 강력한 대선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상호보완적 경쟁 레이스도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당초 이번 총선을 통해 부산경남을 잇는 ‘낙동강벨트’ 구축에 전력을 기울였던 문재인 고문은 기대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역대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접전지역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국면에서 일정수준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부산 사상에서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를 압도적인 차이로 물리치면서 국회 입성에 성공한 것은 물론, 박근혜 위원장을 다섯 번이나 부산으로 불러들일 정도로 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킨 점은 실제 당선으로 이어진 선거구가 불과 3곳에 그쳤다는 결과를 넘어서는 ‘희망’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고문과 함께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평가받는 안철수 원장의 경우, 일부 개인적 인연이 있는 지역구 후보에 대한 지지 발언과 투표일을 임박해 공개한 투표 독려 동영상 등으로 제한되는 소극적 행보를 보였다.
이와 함께 안철수 원장이 최근 강연에서 “(대권 도전은) 제가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 등 갖가지 해석이 난무하기도 했다.
특히 선거를 일주일 여 남겨둔 3일 “정파 정치 등에 빠지지 않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온순하고 따뜻한 분을 뽑아야 한다”고 말한 데 이어 4일 “선거에서 상대방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이와 함께 자신철학과 방향을 제시하는 게 사실 더 중요하다”고 정치발언을 이어간 것에 대해서는 갖가지 해석과 비판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안철수 원장의 발언 의미를 ‘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투표하라’는 취지로 해석하면서 “요 며칠간의 말씀은 새누리당 쪽에 좀 더 도움이 되는 발언으로, 지금은 야권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린 발언은 화제가 되었다.
한 정치 평론가는 “민주당 소속의 인재근·송호창 후보에 대해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인물을 보고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덧붙인 것은 민주당에 대한 거리두기인 동시에 ‘온순하고 따뜻함’이라는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기 위한 이미지 전략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 또 다른 정치 평론가는 “안 원장이 이번 총선에서 일정부분 거리를 둠에 따라 큰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었고, 이는 다가오는 대선 레이스에서 야권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 하나가 온전히 남아 있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한강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안철수 원장. | ||
한편 민주통합당은 야권연대의 성사에도 불구하고 총선결과 통합진보당과 의석을 합치더라도 새누리당의 의석을 넘어설 수 없게 된데 따른 책임문제와 비판여론으로 상당한 후폭풍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바람이 불 것으로 보였던 ‘정권심판론’과 함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투표참여 독려 노력 등에 힘입어 연대를 통한 야권 과반수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에 실망도 더욱 큰 상황이다.
이에 따라 야권으로서는 우선 당장 처해있는 여대야소 정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가 초미의 현안이다. 더욱이 코앞에 닥친 대선 국면에서 이렇다 할 대항마도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 다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명숙 대표는 선거 이틀 뒤인 13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이번 패배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밝히고, 정권교체를 위한 대장정에 당원들이 흔들림 없이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야권은 지지층의 결집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에서 충분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책임문제를 외부로 돌리려는 의도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대립각을 더욱 강하게 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여야 대치 정국이 심화되면서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통합진보당으로서는 그동안 고대해왔던 원내교섭단체 진입에 실패하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제3당으로서 입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성과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에 따라 향후 민주당과 차별화된 진보야당으로서의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