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공정위, 논리공방…재벌정책 맞장?
상태바
전경련-공정위, 논리공방…재벌정책 맞장?
  • 파이낸셜투데이
  • 승인 2005.02.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여정부·대기업 '정책 난기류 형성' 우려 목소리 높아

강 위원장 "공정위 재벌 혼내주는 기관 아니다"
"출총제 대상 5개이하땐 폐지검토"…재계, 경제도 어려운데…

재계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에 대한 규제정책과 공정위 기능 개편을 놓고 정면충돌해 참여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난기류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계와 공정위가 맞붙은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재계가 먼저 공정위의 민감한 부분인 조직과 권한까지 들먹이며 강한 톤으로 비판하고 나섰고, 이에 공정위가 즉각 반박에 나섬으로써 대립각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는 평가다.

양자간 이러한 갈등은 물론 출자총액제한제 등 기업 규제를 둘러싼 대립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서로의 자존심을 이렇게 심하게 건드린 건 처음이라 상당기간 냉기류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간신히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주체들의 투자 소비 심리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16일 '공정위의 기능 사건처리절차의 국제비교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공정위의 위상과 기능, 위원장의 역할 등을 일체 부정하고, 공정위의 경제력 집중 억제기능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공정위의 존재 근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는 즉각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 선진국처럼 공정위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고 합의제 기관으로서의 운영 취지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전경련은 수없이 공정위의 규제정책을 비판해 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조직의 권한과 운영까지 문제삼은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전경련이 작심을 하고 줄곧 가슴에 품어왔던 불만을 표출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경련은 또 공정위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일본 공정취인위원회와 달리 공정경쟁 촉진이라는 본래 목적 외에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을 통해 경제력집중억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며 비판의 강도를 더욱 높이기도 했다.

전경련은 일본 공정취인위원회가 지난 2002년에 경제력집중억제 기능을 폐지한 것을 부각시킨 뒤 공정위도 순수한 경쟁정책기구로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공정위의 핵심권한인 지분제한ㆍ출자제한ㆍ부채비율ㆍ채무보증규제 등을 다른 부처로 넘기라고 주장도 서슴없이 했다.

전경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99년 한국 공정위는 경쟁정책에 집중하고 금융 및 자본시장 관련 규제는 전문 규제기관에 넘기라고 권고한 사실도 다시 상기시켜 공정위의 심기를 건드렸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을 직접 겨냥한 공격도 신랄하게 해댔다.
보고서는 공정위 조사에 대한 승인을 비롯, 주요 사안에 대한 결정을 위원장이 단독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강 위원장의 독단을 은근히 비꼰 뒤 주요 사항을 투표로 결정해 합의제 기관으로서의 취지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밖에 공정위가 합의제 기관으로서의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되려면 위원 상호간은 물론 행정부로부터도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의회 인준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는 미국 FTC나 일본 공정취인위원회를 벤치마킹해 위원장을 포함한 공정위원도 국회 동의나 추천을 받도록 해야 하며, 위원들간의 상하관계도 대등한 관계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이 보고서를 통해 공정위를 이렇게 공격한 날은 공교롭게도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강 위원장을 초청해 토론을 벌인 날이었다.
이러다 보니 전경련의 보고서 발표는 다분히 의도적인 선제공격용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 위원장은 이날 '제32회 한경연포럼' 기조강연을 통해 새 졸업기준에 따라 졸업하는 기업이 많아져 올해 10개 안팎에서 내년에 절반 정도만 남고 대상기업집단이 5개 이하로 줄어들 경우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여부를 전면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 위원장은 이어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서도 내외부견제시스템이 계획대로 잘 추진된다는 조건을 붙여 3년후인 오는 2007년 출총제 폐지를 포함한 전면적 재검토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재벌 규제의 역차별 문제과 관련, "역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본원칙"이라면서 "외국자본이라도 기업집단과 똑같은 구조와 행태를 보이면 당연히 규제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GM대우가 지난해 이미 상호출자제한을 받는 기업집단으로 지정됐으며 론스타 등에 대해서도 규제 대상에 해당되는지 검토중"이라고 덧붙여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강 위원장은 "출총제 졸업기준이 나중에 또 바뀔 것이라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면서 "계좌추적권도 부당내부거래가 없어진다면 3년 뒤부터는 없앨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내용의 기조강연이 끝난 뒤 이어진 토론회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 냉기마저 감돌았다.

조성봉 박사는 "출총제 존폐나 부채비율 졸업기준이 도입과 폐지를 반복하는데, 어느 기업이 공정위 정책을 믿고 따르겠느냐"며 "현 졸업기준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걱정된다"고 꼬집었다.

한경연 좌승희 원장도 "공정위 정책이 어떻게 될지 몰라 기업들은 장기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며 "출총제도 3년뒤 폐지한다는데, 완전 정리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조건이 있는 것인지 분명히 해달라"고 냉소를 보냈다.

이인권 박사는 "공정위는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기구인데 국민들 사이에서 기업집단을 혼내주는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여기에는 공정위의 책임도 있는 것 아니냐"고 수위를 높였다.

그는 이어 "공정위가 운동권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듯이 재벌 친인척 소유지분을 공개해 기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야기하고 있다"고 강 위원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러한 잇따른 공격에 대해 강 위원장은 "공정위에서 재벌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15%에 불과한데도 시장의 반응이 워낙 커 재벌을 혼내주는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억울하다"고 맞받아쳤다.

강 위원장은 또 "선진경제로 발전해 순환출자가 해소되면 이같은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는 발언으로 이들의 주장을 일축하기도 했다.
강 위원장은 이어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정책을 조정하는 것이므로 공정위가 일관성이 없다는 비난은 말이 안된다"면서 "경제적 평등도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마련하자는 의미"라고 쏘아붙였다.

공정위도 이날 '전경련 보고서에 대한 공정위 입장'이란 참고자료를 내고 전경련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했다.

공정위는 전경련이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경쟁촉진이란 공정위의 본연의 기능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과 관련, "출자총액제한 등 대기업집단 시책은 그룹 계열회사와 독립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경쟁을 차단하는 경쟁촉진 정책"이라고 일축했다.

공정위는 특히 전경련이 미국 일본 등의 경쟁당국과 공정위 기능을 비교한 데 대해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력을 확대하는 기업집단 문제가 있다"며 "공정위의 대기업 정책 타당성 여부는 각 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정책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전경련과 공정위의 이러한 공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정부와 재계가 모처럼 일치단결한 모습으로 경제활성화를 위해 매진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돌발사태가 터져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양측이 서로 물러설 곳을 주지 않고 맞서는 모습은 경제에도, 국민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