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7년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나왔다. 시골초등학교의 한 교실을 무대로 엄석대라는 학생이 구축했던 독재 권력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자유당 독재 말기였지만, 독자들은 신군부 독재가 막 무너지고 있던 당시의 감성으로 소설을 읽었다. 소설 속 엄석대는 제목 그대로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선생님들에게는 완벽 그 자체인 학생이었지만 폭력과 회유로 만들어진 허상이었다. 서울서 전학 온 한병태는 홀로 엄석대에 맞서며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체제에 순응한 학급 아이들과 진실에 눈 감은 학교 선생님들의 절대적인 비호에 막혀 굴복하고 만다. 엄석대의 사기극은 서울에서 새로운 선생님이 이 학교로 부임해 온 뒤에야 끝났다.
이문열의 소설이 나온 지 3년 뒤인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발족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공론화에 나섰다. 정대협은 1992년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수요집회를 시작했다. 현재 논란에 휩싸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당시 정대협 간사였다. 그는 사무국장과 사무총장 등을 거쳐 2005년 정대협 상임대표가 됐다. 수요집회 시작부터 함께한 김문숙 부산 정대협 회장은 언론에 “수요집회에 모금통을 갖다 놓은 사람이 윤미향이다. 윤미향이 주도권을 잡은 뒤부터 수요집회가 점점 모금회로 변질됐다”며 “윤미향이 대표가 된 이후 정대협은 할머니를 앞세워 돈벌이하는 단체가 돼 버렸다”고 했다. 실제 정 당선인이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2004년 심미자 할머니를 비롯한 33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은 성명을 내 정대협 해체를 요구하고 모금 금지와 시위 동원 금지 소송도 제기했다. 당시 성명은 충격적인 내용의 고발을 담고 있다.
할머니들은 정대협을 향해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들”이라며 “발족한 이래 1998년까지는 정부로부터 일정액의 정부 보조금을 타내 정대협을 운영해왔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각종 프로젝트니 뭐니 하는 것을 만들어 편법으로 정부지원금을 타내 국민혈세를 축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위안부 인권회복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로서는 전혀 체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반대로 인권유린은 당신들로부터 받은 게 참으로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누구도 할머니들의 고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심 할머니는 2008년 고통 속에서 임종하기 전 7000여쪽에 달하는 유언장을 남겼는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피 빨아먹고 이를 팔아 긁어모은 후원금은 정대협 윤미향에게 지불해도 우리에게는 한 푼도 안 돌아왔다”며 “윤미향은 수십 개 통장을 만들어 전 세계에서 후원금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떵떵거렸다”고 적었다. 2012년 한일 위안부 협상을 주도했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최근 유튜브를 통해 심 할머니가 고통 속에서 삶을 마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위안부 피해자 마케팅으로 그간 정치적 흥행을 누려왔고 또 법 위에 군림하는 이런 사람들 잘못 건드렸다가 토착 왜구로 몰리면 그 후환을 아무도 감당 못 한다. 공직자는 정의연에 찍히면 신세 망친다”라고. 그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비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