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배나은 기자]보험계약 시 대리인이 피보험자 건강상태를 몰랐다면 사전고지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보험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피보험자가 메리츠화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계약자가 피보험자 본인이 아니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신체상태를 적극적으로 확인해 고지하지 않았더라도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며 김모씨의 손을 들어줬다.
김씨의 어머니인 조모씨는 2007년 6월 메리츠화재에 김씨의 건강보험을 가입하면서 계약서의 ‘최근 3개월 내 진찰, 진단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그러나 김씨는 그 무렵 갑상선결절 진단을 받았고 출산을 한 뒤 2008년 9월 수술을 받았다. 이어 퇴원 때 암 진단을 받아 이듬해 1월 입원해 치료를 받고 2009년 8월 갑상선암 진단 및 치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이에 메리츠화재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금융소비자 단체는 이번 판결이 보험사들이 고지의무위반을 보험금 지급거부를 위한 핑계로 삼던 잘못된 관행에 쐐기를 박았다는 입장이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그간 보험사는 자신들의 사실 확인 의무는 소홀히 하고, 계약자들의 고지의무만을 강조해 왔다”며 “별다른 확인 작업 없이 보험료를 꼬박꼬박 받다가 막상 지급 상황이 되면 보험 해지 통보를 해버리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인해 의도적인 고지의무 위반 사례가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지의무를 두는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라며 “보험사가 개인의료정보를 사전에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약자가 ‘몰랐다’는 이유로 고지의무를 어기는 것이 당연해진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해당 질병의 발병률이 높은 피보험자가 계약자와 합의 후 입원사실이나 치료사실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할 경우 전체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한 사람의 고지의무 위반으로 나머지 99명이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니만큼 판결이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