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조현경 기자] 16일 조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수장들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나온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대남 담화는 남북관계 전면 단절을 경고하면서도 미국에는 절제된 표현을 사용한 짤막한 경고에 그쳤다. 북미 협상을 위해 남북 관계를 수단으로 활용해 온 북한의 상투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직접 거래하면서 남한은 배제) 카드인 셈이다.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뒤늦게 한미훈련 실시를 이유로 "남조선 당국은 또다시 온 민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따뜻한 3월'이 아니라 '전쟁의 3월' '위기의 3월'을 선택했다"며 "스스로 자신들도 바라지 않는 '붉은 선'(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얼빠진 선택을 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대와 마주앉아 그 무엇을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는 것이 우리가 다시금 확증하게 된 결론"이라며 "대남 대화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김 부부장은 또 "우리를 적으로 대하는 남조선 당국과는 앞으로 그 어떤 협력이나 교류도 필요 없으므로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관련기구들도 없애버리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우리는 앞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와 행동을 주시할 것이며 감히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 군사분야합의서도 시원스럽게 파기해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우리의 통일부 격인 조평통을 폐지하는 데 이어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안전판 역할을 해온 9.19군사합의까지 상황에 따라 파기할 수 있다는 엄포다.
한국은 대북정책에서 한미 공조가 불가피한 만큼 이번 경고는 표면상 우리 정부를 때리며 바이든 행정부에 압박을 가한 모양새다. 문제는 대미 압박을 위해 남북 관계 전면 단절까지 언급한 점이다. 남북 관계가 북미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버려도 무방하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11일 신년사에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발맞춰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멈춰있는 북미대화와 남북대화가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약 두 달 만에 '통미봉남' 카드를 내민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 중재외교에 힘입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와 톱다운 외교를 벌였던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후 남북 관계를 북미 관계의 종속변수로 두는 모습이 확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