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5년간 이어져 오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경영 전통이 깨졌다. 대우건설 인수를 무리하게 추진한 데 따른 ‘승자의 저주’라는 평이다.박삼구(64)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을 맡고, 박찬법(64) 항공부문 부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한다고 밝혔다. 또 그룹을 살리기 위해 동생인 박찬구(61) 회장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고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도록 했다고 알렸다.이에 따라 형제경영의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통하던 금호아시아나의 전통도 막을 내리게 됐다.금호아시아나의 형제경영은 25년 전인 1984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금호그룹의 모태를 만든 박인천 회장의 별세에 따라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그룹을 물려받았다. 이어 1996년 차남 고 박정구 회장이 그룹의 총수 자리를 이어갔다.2002년 박정구 회장이 고인이 되면서 3남 박삼구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 다섯 형제 중 셋이 차례로 경영권을 물려받는 형제경영의 전통을 세운다.이 과정에서 장남 고 박성용 명예회장부터 4남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까지 형제들이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고르게 나눠 가졌으며 이는 아들들에게도 물려졌다.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2~4남 일가는 그룹의 양대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화와 금호산업의 지분을 똑같이 나눠가졌다.당시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인 박철완 아시아나항공 부장, 3남 박삼구 회장과 그의 아들인 박세창 전략경영본부 상무, 4남 박찬구 회장 부자들의 금호석화 지분은 각각 10.01%씩이었다. 금호산업 역시 6.11%씩으로 똑같았다.그러나 최근 박찬구 회장 부자가 금호산업 지분을 팔고 금호석화 지분을 사들이면서 동일지분의 전통이 깨지는 이상징후가 포착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15일부터 박찬구 회장과 아들 박준경 금호타이어 부장은 금호산업 지분을 팔고 금호석화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8일 금호산업의 잔여 지분을 모두 매도한 이들 부자는 16일 기준 금호석화 지분을 18.43%까지 늘린 상태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형제갈등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석화와 금호산업이 그룹의 양대 지주회사로 군림하며 48개에 이르는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이 가운데 금호석화가 금호산업 지분 19.03%(보통주 기준)를 보유하고 있어 금호석화를 지배하면 실질적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박찬구 회장 부자가 금호석화의 지분을 계속 늘려간 것도 이같은 그룹의 지배구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재계에서는 대우건설 재매각 사태와 관련해 불만을 품은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화를 필두로 석유화학부문을 묶어 독립경영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 또 65세 연말을 기점으로 그룹 총수자리를 형제에게 물려주는 그룹의 룰에 따라 내년이면 65세가 되는 박삼구 회장에게서 그룹을 물려받으려는 사전작업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돌았다.그러나 당시 박삼구 회장은 동생의 행보에 큰 분노를 표했으며 결국 가족회의를 통해 자신과 동생의 동반퇴진까지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박삼구 회장도 이날 “나와 동생간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격려를 해줬으나 결국 이런 결론에 다다른데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동생을 해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나도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혀 형제갈등이 동반 사퇴의 직접적 이유임을 인정했다.한편, 금호석화 이사회의 해임결의에 대해 박찬구 회장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향후 형제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제휴사=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