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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재영 기자]가까운 지인이 신용카드를 자주 잃어버린다. 필자의 경우 카드를 사용하고 곧바로 지갑에 넣은 다음 지갑을 왼쪽 바지 주머니에 항상 보관한다. 그게 습관이 돼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지인은 카드를 아무 데나 보관한다. 주머니에 넣기도 하고 휴대폰 케이스에 끼워두기도 하고 그런 식이다. 휴대폰을 사용하려고 주머니에서 꺼내다 카드가 섞여 나와 어딘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래서 필자처럼 지갑에 보관하라고 하면 잠시 그랬다가 또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잃어버렸다. 지갑을 가지고 다니기를 귀찮아하는 것 같다.
카드를 분실하지 않으려면 지갑이 필요하고 지갑을 꼭 챙기는 습관에는 우선 개인 기호에 맞는 지갑이 필요하다. 마음에 들어야 소중히 여기고 소지하니 말이다. 그러자면 지갑도 아무 거나 쓰면 안 되고 맘에 드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돈도 써야할 것 같다. 카드보다 큰 지갑은 훨씬 더 분실할 확률이 낮다.
산업재해 예방도 비슷한 원리로 이뤄지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은 실수를 하기 때문에 어느순간 안전을 망각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안전관리자 고용이 필요한 것인데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관리자를 고용한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부분에서 사고 위험이 높은지 알고 조치해야 하는데 정작 관리자의 전문성이 떨어져 이를 교육하는 게 또다른 일이라는 지적이다.
기업은 별도의 안전관리자를 고용하고 육성하는 데 돈을 쓸 여력이 부족하다. 입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원가를 최대한 줄여야하는 데 안전관리자 고용에 돈을 쓰기가 녹록지 않다. 혹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실적을 높이기 위해 비용절감에 매달리게 되고 그 속에 안전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
결국 지갑도 안전도 비용과 결부된다.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붕괴 사고를 조사한 경찰은 현장에서 지지대(동바리)를 무단 철거한 정황을 의심했다. 비용을 아끼려고 안전에 필요한 지지대를 미리 철거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이번 사례 외에도 이전 사업장 사망사고 원인을 따져보면 근본적으로는 비용 문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의 실수라고 하더라도 이를 단속할 안전관리자의 고용 여부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경영인 처벌이 강화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앞두고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 비용을 늘려야 하는 부담이 클 것이다. 단기 실적 내기에 바쁜 전문경영인이 전에 없던 안전 비용을 추가하는 선택은 자발적으로 하기 어렵다. 따라서 안전은 비용절감 관행을 끊도록 기업집단 총수가 결단해줘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느 한 기업만 그러면 수주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그래서 입찰 경쟁력 평가의 최고 점수는 안전에 둬야 한다. 실적을 위해 비용을 줄이고 그 때문에 소외되는 안전은 하청에 맡기는 등 지금은 책임 전가로 점철돼 있다. 책임을 미루는 데는 정부도 한몫한다. 안전대책은 산업 전반의 비용이 오르는 요소다. 이러한 비용 문제의 정책적 대안이 없다. 정부가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해 안전비용이 필수가 되도록 산업문화를 유도하기보다 문제 기업을 엄벌하는 것만이 대책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