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누구나 인정하는 창업국가다. 이를 상징하는 제도 중 하나가 규제샌드박스다. 한국핀테크연구회가 2015년부터 규제샌드박스제도의 도입을 주장해 2018년 혁신금융지원법을 이끌어 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5년이 경과한 지금 스타트업과 비금융혁신기업들을 위한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은행, 증권사 등 기존 금융기관들과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들의 전유물이 됐다. 현재 핀테크 산업은 크라우드펀딩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 입법과 P2P 제정법이 크라우드펀딩업과 P2P를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등 어려운 상황이다.
OECD가 내놓은 회원국들의 ‘기회형 창업과 행정부담의 상관관계 조사’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23개 회원국 중 23위다. 이 아이러니에 윤석열 정부 혁신의 현주소가 있고 전 정부들과 차별화할 점이 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무정부상태로 방치된 블록체인 등 가상자산 관련 생태계도 같다. 문재인 정부의 금융위원장들은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성이 인정될 수밖에 없는데도 이를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증권과 파생금융상품을 통칭하는 개념이다)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금융위원장들의 발언으로 규제는 한치도 진전을 보지 못했고 혁신시장도 지체됐다.
결국 도전적인 프로젝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유투브에나 존재할 다단계 코인들이 차지했다. 업비트, 빗썸 등 거래소에만 존재하는 코인들이 난무했다. 하물며 카카오 같은 대기업조차 프로젝트를 섣부르게 출시해 근래 클레이튼 프로토콜 설계 문제로 메타콩즈 등 토큰들이 탈출해 플랫폼 기능을 거의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테라-루나 사건은 사실 예정된 참사다. 문재인 정부의 블록체인, 혹은 코인을 금융상품에서 제외함으로써 적용할 법규를 찾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증권형과 비증권형을 구분하고 증권형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블록체인이나 가상자산 관련 규제설계의 중심에 업비트, 빗썸 등 중앙화된 거래소(CEX)를 상정하고 있다. 출발이 잘못됐다. 모든 중심에는 도전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 가상자산 프로젝트를 상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내 거래소에 상장된 국내 가상자산들 중에서 백서에 기술된 대로 생태계를 형성한 프로젝트가 있는지 묻고 싶다. 모두 문재인 정부의 규제설계 부재와 무지가 낳은 산물이다.
윤석열 정부는 중앙화된 거래소 중심의 생태계를 설계해서는 안 된다. 편의성을 앞세워 거래소, 교수나 연구원 중심의 모임으로 규제를 설계해서는 결코 혁신적인 생태계가 창출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앙화된 거래소 시장에는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과점시장을 두고서는 투자자보호도 도전적인 프로젝트의 현실화도 어렵다. 2016년부터 금융혁신 제도로 정착시켜 온 영국의 경우, 스타트업과 소규모 기업들이 규제샌드박스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들은 소매금융, 보험상품, P2P, 투자 등 다양한 금융분야에서 와해적 혁신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한국이 창업국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혁신의 결과를 중시하지 않고 투입을 기준으로 규제를 설계한다면 혁신생태계는 우리나라에서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