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새 상장사 차입금 증가 속도 자산대비 1.5배
상장사 5곳 중 2곳, 영업이익으로 이자 내고 나면 끝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국내 상장사들의 재무안정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온다. 올해 들어 금융비용 증가로 국내 상장사의 차입금이 자산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시장에선 향후 추가 금리 인상이 예고된만큼 상장기업들의 이자 상환과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3년간의 재무 데이터가 공개된 비금융 상장사 1719개사의 별도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국내 상장기업들의 자산 총계는 작년 동기 대비 9.8% 증가한 2319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이들 상장기업의 차입금은 509조8000억원으로, 14.9% 늘었다.
지난 1년 새 차입금 증가 속도가 자산 증가 속도보다 1.5배 정도 빨랐다는 얘기다.
올해 상반기 국내 상장사들의 차입금 의존도(총자산에서 총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2.0%로 작년 동기 대비 1.0%포인트(p) 상승했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에서 금리가 빠른 속도로 인상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재무안정성 악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금리가 오르면 차입금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이자 등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고, 이는 결국 재무 안정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1년 새 매출액 상위 기업을 중심으로 차입금이 늘고, 하위 기업은 보유현금이 줄어든 것도 위험 요인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20%(5분위)의 상장사들은 올해 상반기 총차입금이 작년 동기 대비 15.0% 증가했다. 이는 매출액 하위 20%(1분위)의 상장사들의 차입금 증가율(12.1%)을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특히 차입금 의존도 증가율은 매출 상위 20% 기업이 1.0%p를 기록해 하위 20%의 0.1%p보다 크게 높았다. 전체 자산 대비 차입금 비중 상승 속도가 매출 상위 20% 기업이 하위 20% 기업보다 10배 빨랐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 하위 20% 기업의 보유 현금이 작년 동기 대비 10.0% 감소한 것도 우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금리 인상에 따라 기업들이 차입금을 점진적으로 축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현금이 부족한 매출 하위 기업들은 차입금 상환 비용 마련을 위해 지분·토지 등 보유 자산을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경련은 분석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들의 차입금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재무안정성 악화가 우려된다"며 "금리인상 속도 조절과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기업들의 기존 대출에 대한 이자 상환과 추후 자금 조달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진단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2년 7월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잠정)'에 따르면, 기업대출 금리(4.12%)는 전달보다 0.28%포인트 상승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 0.25%포인트, 0.30%포인트 올랐다.
가계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올 들어 급격히 올라간 원자재 가격과 기준 금리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이자보상배율이 1에 못 미치는 기업은 분석 대상 상장사 1675개 중 690개로 집계됐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이 부채에 대한 이자지급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1 미만일 때는 갚아야 할 이자비용보다 기업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더 적었다는 뜻이다. 결국 상장사 5곳 가운데 2곳은 영업활동으로 번 돈으로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는 의미다.
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유동성 확보는 최우선 경영 전략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상장사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기업의 현금 확보는 수익 악화로 부채비율까지 높아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