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흔드는 김정일의 속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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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흔드는 김정일의 속셈은?
  • 권민경 기자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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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대북사업 적신호 “북한 다른 대기업과 접촉설”

북측, 김윤규 부회장 퇴진 빌미 현 회장 길들이기 관측
관광사업에서 더 많은 경제적 실리 챙기기 위한 포석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체제의 대북사업이 갑작스런 암초에 걸려 흔들리고 있다. 북한이 지난 8월 25일 현대그룹 측에 9월부터 금강산 관광객 수를 절반 수준인 600명으로 줄이고 2박 3일 단위 관광으로 제한해 시행할 것을 통보한 것이 화근이 됐다. 관광 성수기인 가을철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나온 북한 당국의 이런 결정에 현대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조치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현대 측이 비리를 빌미로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해온 김윤규 부회장을 현대아산 대표이사직에서 퇴진시킨데 대해 북한 측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대북관광산업이 개성과 백두산으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북한이 경제적 실리를 위해 국내의 다른 대기업과 대북관광사업을 물밑에서 협상중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이 표면상으로는 김 부회장의 일선 퇴진을 문제 삼고 있지만 속내는 관광사업에서 더 많은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한 포석일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과 현대그룹간 갈등이 표면화 된 것은 지난 8월 3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금강산 남북 면회소 착공식 참석차 방북했을 때 기업 총수에 대한 통상적인 예우와는 달리 북측이 현 회장을 홀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특히 예정됐던 옥류관 개관식 등 행사에서도 북측 인사들이 전혀 참석하지 않아 금강산 관광 축소 문제를 논의할 만한 상황이 마련되지 않았다. 현 회장이 방북을 위해 북측 출입문 사무소를 통과할 때 북한이 현 회장의 핸드백 검사까지 했다는 얘기가 알려지면서 북한과 현대간 냉기류가 증폭됐다. 현 회장은 이번 사태에 즉각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며 불끄기에 나섰지만 북-현대간 상황이 심상치 않다. 북한은 이런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대해 “김윤규 부회장을 현대아산 대표이사직에서 퇴진시킨데 대한 것” 이라고만 언급했다.그러나 일각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개성관광 비용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북한이 현정은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현재 개성관광 대가로 1인 당 150달러를 요구하고 있으나 현대는 관광객을 모집하기엔 이 가격이 너무 비싸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경영권은 기업의 고유한 권한인데 북한이 경영권까지 좌지우지 하려는 것은 비상식적인 처사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현대아산의 사업이 북한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북관광사업에 있어서 북한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과 불예측성을 고려해보면 북한의 태도변화가 김 부회장 퇴진과 관련한 것이든, 현 회장 길들이기든 현 상황이 현대의 대북사업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김정일 만난 것 불행의 전주곡?

현 회장은 지난 7월 16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백두산과 개성 관광까지 성사시키면서 대북사업이 순항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을 수 있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금강산은 정몽헌 회장에게 주었는데 백두산은 현 회장에게 줄 테니 잘 해보라” 며 현 회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인정했다. 이 면담을 계기로 그 동안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유일한 창구였던 김 부회장 없이도 자신이 직접 대북사업을 주도하고자 한 것이나 결과적으론 무리수였다.김 부회장은 현대가의 마지막 가신이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80년대 중반부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최측근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 96년 정몽헌 회장이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현대건설 상무로 있으면서 정 회장과 인연을 쌓았다. 특히 2000년 현대그룹 내에서 소위 ‘왕자의 난’이 있을 때도 김 부회장은 정 회장 편에 서서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에 맞섰다. 2001년 이후 김 부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직을 그만두고 정 회장과 함께 대북 사업에 전념해 왔고 이후 김 부회장의 위치는 확고부동했다. 특히 고 정몽헌 회장이 남긴 유서를 통해 현대그룹 내 입지가 더욱 굳혀지는 상황이었다. 당시 정 회장은 김 부회장에게 “(정주영)명예회장님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 라는 유언을 남겨 김 부회장에게 대북사업의 미래를 맡겼다. 그러나 현 회장은 이 같은 유언에도 불구하고 김 부회장 시대를 정리하며 그를 대북사업에서 사실상 배제시켰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공식적으론 김 부회장이 대북사업자체가 투명하지 않을 만큼 내부 감사에서 드러난 묵과할 수 없는 개인비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아산은 지난 8월 19일 현정은 그룹회장과 윤만준 사장 등이 참가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고 “올 3월부터 대내외 업무를 나누어 공동대표제를 유지해 왔으나 업무 추진 과정에서 비효율성이 발생됐다” 면서 “일관된 회사 정책 수립과 이원화된 업무의 혼선을 막기 위해 김윤규.윤만준 공동대표 체제에서 윤만준 단독대표이사 사장 체제로 재편시키기로 했다” 고 밝혔다. 현대그룹에서 밝힌 김 부회장의 비리 혐의는 금강산 부대시설인 온정각과 신축 중인 제2온정각 등을 친지들과 지인에게 특혜 분양했다는 의혹과 강원도 땅 위장 매입과 땅 투기설, 북한 사업소에서 벌어들인 외화 밀반입 등이다.그러나 이번 북한의 반응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대북 사업에 있어 김 부회장의 업적과 위상을 놓고 볼 때 그의 퇴진은 현대 측의 설명만으로는 모자란 구석이 있다. 이보다 현정은 회장의 친정체제 강화를 위해서는 대북사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김 부회장의 퇴진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현 회장의 입장에서는 김 부회장의 퇴진으로 인해 북한과 단기적인 마찰을 빚게 되더라도 향후 대북사업의 주도권을 자신이 쥘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김 부회장의 개인비리가 드러난 내부감사도 현 회장의 직접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고, 감사의 첫 대상이 주력 계열사가 아닌 김 부회장이 몸담고 있는 현대아산으로 잡힌 점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 예상수위를 훨씬 넘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편 금강산 관광이 난관에 봉착한 지금 그 핵심에 서 있는 김 부회장은 대표 이사직에서 해임된 이후 중국에 머물다 지난 30일에야 귀국했다.

그 사이 일각에서는 김 부회장이 중국 현지에서 자신의 구명운동을 펴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은 “북측이 왜 그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며 “구명운동에 대한 얘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북측 인사를 만나지도 않았다. 중국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중국에 머물렀을 뿐이다”라고 일축했다. 또 김 부회장은 귀국 후 “금강산 관광이 이렇게 된 줄 몰랐다. 현정은 회장 중심 체제로 가는 이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고 모두 도와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렇게 김윤규 부회장의 퇴진을 계기로 현대그룹과 북한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대북사업의 미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북한이 김 부회장 퇴진 문제를 빌미로 실은 대북 관광권을 따내려는 다른 기업들을 놓고 주판알을 튕기는 것이라는 설까지 나돌고 있어 현대로서는 더욱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북한의 갑작스런 태도변화 뿐 아니라 현대 아산이 현재 대북사업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 또한 큰 문제인데, 북한과 관광사업을 하려는 남한 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자연히 대북사업 비용은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초기에 과도한 투자를 했던 현대아산은 지금 자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골프장, 가족호텔, 제2온정각 등 금강산 관광시설물에 대한 남측의 민간투자가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개성 관광 사업에 이제 첫 발을 띤 현대그룹도 시름을 앓고 있다. 1998년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한 현대그룹이 대북 사업에 쏟아 부은 돈은 7년간 10억 5300만 달러(한화 약 1조 530억원)에 이른다. 금강산 관광사업 대가로 북한에 4억 달러를 지급했고, 이와는 별도로 철도와 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을 비롯한 7대 경제협력사업에 대한 사업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5억 달러를 북한에 줬다. 이 대가로 현대는 금강산을 비롯한 개성 등의 관광사업과 관련해 향후 50년간 토지 이용권리를 독점적으로 갖게 됐다.

여기에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한 도로 개통과 항만시설, 온천장 설립 및 해금강호텔 매입, 각종 숙박시설 건립을 위해 추가로 1억53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현대가 대북사업으로 자금난을 겪자 한국관광공사는 현대가 설립한 온천장과 교예회관 및 온정각 투자에 900억원을 투입했었다.

정부는 또 이산가족과 학생들의 금강산 관광을 촉진하기 위해 보조금 120억원을 지원하고 남북협력기금도 30억원을 썼다.

초기 대북사업에 이처럼 막대한 투자를 한 탓에 현대아산은 지난 6년 동안 적자를 면치 못했다.

1999년 이후 줄곧 적자였던 현대아산은 지난해 겨우 7억원의 이익을 냈지만 이것도 환차익이 대부분으로 더 이상 현대아산에는 투자할 돈이 별로 없는 것이다. 현대 관계자는 “대북경협도 물론 하나의 사업이기 때문에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현대가 대북 사업에 있어 단기적인 수익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 사업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사업은 일개 기업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가적, 민족적 사업이다. “면서 “적극적인 투자 유치가 절실한 상황” 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도 드러내고 대북사업을 도와주지는 못한다. 일단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에 해당되는 데다 과거 대북사업에서 곤욕을 치렀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편 금강산 관광 축소에 이어 9월말 실시 예정이던 백두산 관광 시범사업도 위기에 놓여있다. 현대아산은 지난 7일 “9월 5일에서 10일 사이에 백두산 관광을 위한 사전답사를 실시한 예정이었으나 북측의 협상 거부로 답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고 밝혔다.

힘들게 얻어낸 개성과 백두산 관광 사업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서 현대그룹이 어떤 식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시켜 대북 사업을 추진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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