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역할하던 딸, 생일 맞은 아들 잃어…이태원 참사 애끓는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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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역할하던 딸, 생일 맞은 아들 잃어…이태원 참사 애끓는 사연들
  • 나광국 기자
  • 승인 2022.10.31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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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휴가 나온 막내 잃은 어머니…골수 이식해준 딸 잃은 아버지
교환학생으로 한국 찾은 스티븐씨, 호주에서 온 그레이스 래치드씨도 사망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절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절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나광국 기자] 서울 이태원 참사로 숨진 희생자들의 애끓는 사연이 속속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친구들과 놀러갔던 아들과 취업에 성공해 상경한 딸, 한국을 좋아해 교환 학생으로 왔다가 변을 당한 외국인 유학생 등 피해자들의 사연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 있다. 희생자 중에는 결혼한 첫째 언니를 대신해 가족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한 착한 딸도 있었다. 네 딸 가운데 둘째 딸 C씨를 잃은 어머니는 서울 등지의 병원을 헤매다가 경찰로부터 사망자 명단에 C씨가 포함됐다는 연락을 받자 주저앉아 오열했다. 가족들은 C씨가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면서 몸이 아픈 어머니를 돌보고 동생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고 사연을 전했다.
경기 용인 평온의숲 장례식장에는 지난 30일 20대 직장인 A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이날은 A씨의 생일이었다. A씨의 아버지는 지난 금요일 아들과 함께한 식사가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짓다가 연신 눈물을 닦으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막내아들이 생일을 하루 앞두고 친구들과 이태원으로 놀러 갔는데 사고가 났다”며 오열했다. 군에서 휴가를 나왔다가 이태원에서 변을 당한 막내아들 B씨의 사연이 전해졌다. B씨의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사망 사실을 30일 오전에 확인하고 카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는 참사 소식을 접하고 밤새 아들에게 애타게 연락했지만,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B씨는 참사 2시간여 전인 전날 오후 8시 30분에도 상관에게 유선 보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참사로 딸을 D씨를 잃은 사연도 전해졌다. D씨는 지난 30일 오전 서울 강북삼성병원으로 뇌사 상태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D씨는 사고 당일 친구를 만나려고 경기 부천에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으로 왔다. D씨의 아버지는 “백혈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3년 전 골수 이식을 해준 딸이다”며 “항상 살갑고 속 깊은 딸이었는데 아빠가 너무 미안하고 다음 생에도 아빠 딸 해줬으면 좋겠다”며 오열했다. 항상 웃고 밝았던 첫째 딸인 E씨는 올해 2월 입사 시험에 합격해 혼자 서울로 온 후 정규직 전환을 위한 공부를 이어왔다. 최근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친구와 이태원으로 놀러간다는 말에 부모는 “다녀와서 면접 준비해”라며 흔쾌히 승낙했지만, 그게 딸 아이와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다. E씨의 어머니는 “꽃다운 나이에 이직 할 일도 많고 나중엔 사랑을 하고 결혼도 했을텐데”라며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떠나보내는 것 같아서 지금도 못보겠다”고 울먹였다.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경기도의 레스토랑을 예약해줬던 딸의 사연도 전해졌다. 피해자 F씨의 아버지는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함께 저녁을 한 후 가족 단체 메신저방에 “딸 덕분에 좋은 곳에 왔다”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사진을 함께 보냈다. 이후 딸은 사진이 잘 나왔다며 “그동안 저를 키워주시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 차차 갚아 나갈게요”라는 마지막 연락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외신들은 이역만리에서 황망하게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외국인 부모들의 애타는 사연을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스티브 블레시씨는 29일(현지시간) 아내와 쇼핑을 하다 한국에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차남 스티븐이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갔기에 혹여나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초기 보도에서 희생자 중 미국인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소식에 잠시 안도했지만 부모의 애타는 기도는 통하지 않았다. 3시간 뒤 블레시씨는 주한 미국대사관으로부터 아들이 사망자 명단에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그는 NYT와 인터뷰에서 “한 번에 수억 번을 찔린 것 같았다”고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희생자 중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온 23세 여성 그레이스 래치드도 있었다. 호주의 영화사에서 일했던 그녀는 친구 2명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일본인 희생자 도미카와 메이씨의 부모는 뉴스를 통해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고 서울에서 유학 중인 딸이 걱정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겨우 전화를 받은 것은 뜻하지 않게 한국 경찰이었다. 부부는 딸이 무사하길 간절히 빌었지만 얼마 뒤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딸이 사망자 명단에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번 참사로 희생된 26명의 외국인 중에는 이란과 우즈베키스탄, 스리랑카, 중국 등지 출신도 포함돼 있다. 다만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은 외신을 통해 아직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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