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대학에 입학할 무렵은 대한민국의 입시가 전 세계에 드문 지옥의 문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그때 이웃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입시를 토픽으로 전하기도 했다.
이런 입지 지옥의 자리를 요즘은 연 1,000만 명이 치른다는 중국의 가오카오와 인도의 JEE(Joint Entrance Examination·IIT의 입학시험)이 대신하고 있다.
저신뢰 사회에서는 대학 입학시험이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이기 때문에 대학 입학시험 결과를 가장 신뢰 있는 지표로 본다. 인도에서 JEE 성적을 박사과정 입학까지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학부 과정의 평정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도 대입 시험의 극강 난이도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의 평정 시스템이 사람을 걸러내는 기능에 충실하기 위함일 것이다.
다시 우리의 수능에 대해서 살펴보자.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 3교시 영어, 4교시 한국사· 사회과학탐구, 5교시 제2외국어와 한문으로 오후 5시 45분 종료됐다. 총 지원자는 50만 8,030명이고 그 결과는 12월 9일 발표된다. 항공기 이·착륙 연장, 공무원 출근 시간 조정, 각종 이동 수단의 비상 동원 등 수능에 대한 긴장감은 12년 동안 쌓은 공을 신중히 풀어내는 중요한 시간이다. 여기에 전국에서 동시에 같은 내용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인지 시험지 관리에 대한 경비도 삼엄했다.
시험문제에 대한 유출이나 출제 범위, 출제자들의 오류와 오답 발생, 수험생들의 정서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문제 출제 등 다양한 단점이 있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학생들의 수준을 확인할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시대에 따라, 대입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변화했고 2022년 11월 17일 치러진 수능 시험은 30번째이다. 지난 30년 동안 입시제도가 가진 특별한 환경을 맞추기 위해 돈 주고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대적 분위기는 지금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때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철학 문제의 형이상학적 질문에 우리 사회는 부러운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꿈은 필요한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이런 멋진 문제를 놓고 4시간 가까이 작성하게 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우리도 그런 근사한 시험제도를 가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묻고 싶다. 대학 입시를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논술로 변경한다고 우리의 입시 문제가 해결될까? 본고사를 부활하면 입시 경쟁,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될까?
아직 어린 자식을 키우는 필자는 생각한다. 수능이건 논술이건 고교학점제이건 무엇을 한다고 해도 우리의 입시 문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10년 후에도 똑같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치열한 입시는 교육 문제가 아닌 승자독식 구조의 사회문제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