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강제징용해법 "전범 기업 빠져, 사실상 대법원 판결 형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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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강제징용해법 "전범 기업 빠져, 사실상 대법원 판결 형해화"
  • 김연지 기자
  • 승인 2023.03.06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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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안보 협력 위해 피해자 의사 묵살"
"'제3자 변제', '반쪽 해법' 비판 피하기 어려워"
6일 오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일 오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김연지·이진하·염재인 기자] 정부가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공식 발표했지만 피고인 일본 전범 기업 대신 국내 재단이 배상급을 지급하는 데 대해 '반쪽 해법'이라는 비판과 함께 대법원 판결 취지를 역행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일 <매일일보>와 인터뷰를 한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최종안과 관련해 피해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방안이라며, 일본 측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기울어진 해법이라고 비판했다.

외교부가 이날 언론에 배포한 해법 설명자료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산하 재단은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 3건의 원고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키로 했다. 이들에게 지급할 금액은 약 40억원 규모다.

우선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최종안이 피해자의 인권을 충분히 고려치 못한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위해 피해자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성급한 대책을 내놨다는 지적이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위해 피해자들의 의사를 사실상 묵살해버린 측면이 있다"며 "이러한 부분들이 인권 문제를 생각할 때에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도 "정부는 한일 관계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데, 피해자들의 인권까지 무시하면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전범 기업의 직접적 지원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 정부 산하 재단이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방식이 일본 전범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구체적으로 일본 측의 기금이라든지 또는 배상, 기업의 사재 이런 것들이 거의 다 빠진 상태"라면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 부족한 해법이다. 조금이나마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했는데 지나치게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법원 확정 판결 내용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한 위자료 청구권'이라고 판시돼 있지만 이번 '제3자 변제' 안의 경우 '위자료'의 성격이 아닌 '보상금'의 성격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15명이다.

양 교수는 "일본 측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제공한 5억달러로 전부 다 완전하게 해결이 됐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나와 있는 가해 기업들이 돈을 낼 수 없다는 것"이라며 "이 부분이 한일 양국 간의 충돌 지점이었는데, 결국 일본의 전범 기업들은 다 빠졌다. 사실상 대법원 판결이 형해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측이 포괄적으로 5억달러를 지급했지만, 정신적 위자료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결이고, 가해 기업의 사죄와 배상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데 이런 부분들이 누락된 해법이라는 점에서 피해자들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양 교수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나온 부분이 전혀 이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는 덮고 미래지향적으로만 간다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김 실장도 "이번 정부의 해법 발표는 대법원 판결을 행정부가 무력화 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이번 '제3자 변제'는 보상금의 성격이다. 그리고 사실상 전범 기업이 포함되지 않았다. 기부금 형식이라도 책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위자료라는 성격은 완전히 빠져 있다"며 "핵심적인 부분이 빠진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고들(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라며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단이 변제할 돈을 공탁소에 맡기면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돈이 지급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공탁 무효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호사카 교수는 "돈이 공탁소에 맡겨지면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도 돈이 지급된다. 피해자들의 마지막 동의가 필요없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피해자들이 공탁 무효 소송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이 기울어진 해법이라는 비판과 함께, '외교 실패'라는 주장도 나왔다. 아울러 이번 강제징용 해법 발표로 한국이 얻은 점이 무엇인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실장은 "우리 정부는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 외교적 실패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일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 외교적으로 일본에게 받을 만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사카 교수도 "사실상 일본 측이 원하는 부분을 모두 충족해 줬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일 관계와 한미일 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동안 과거사를 쟁점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한국의 통 큰 양보로 빠른 시일 내에 한일 정상회담 또는 한미일 정상회담 등이 추진되는 등 정부 간의 관계는 상당 부분 원만히 복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되면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에 더 강경 대응하게 되고, 남북 갈등이 더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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