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일본 면죄부 주는 최악의 외교적 패착·국치"…정의 "피해자 마음 짓밟아"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그런 돈 죽어도 안 받아" "일본에 기죽고 살아야겠나"
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 중심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에 대한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과 시민사회는 '긴급 시국선언'을 개최하고, 일제 강제동원에 대한 정부의 해법을 규탄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피해자인 양금덕·김성주 할머니도 직접 시국선언에 참여해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범야권과 시민사회 단체는 '굴욕적인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를 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 자리에서 "참으로 수치스럽다"며 "국가는 굴종하고 국민은 굴욕 느끼고 피해자는 모욕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 동의 없는 '제3자 변제'는 법적으로도 안 된다"며 "피해자가 (제3자 변제 결정을)싫다 하지 않나.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 당국의 진지한 사과 없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 없이 봉합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이 대표는 일본 정부를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적 가해 사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번 정부 발표로 일본의 귀책이 사라진 건 아니라는 점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현장에 피해자가 있고 인권을 침해한 강제동원 사실이 엄연히 존재한다"며 "그런데도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말하는 게 진지한 사과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합의를 했다 해도 이는 국가 간 합의지, 민간인의 불법적 피해에 대한 배상이 합의된 건 아니다"라며 "그 명백한 사실을 대법원이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이 대표는 윤 정부에 대해서도 재차 유독 우리나라에만 보이는 일본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를 방관한다며 날을 세웠다. 그는 "일본은 다른 나라에는 배상했는데 왜 한국만 예외적으로 안 된다고 차별하나. 이 차별을, 윤 정부는 왜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나"라며 "과거 위안부 문제도 (피해자 동의 없이) 일본 정부와 일방적으로 합의한 박근혜 정부가 어떤 심판을 받았는지 똑똑히 기억하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일본에게 진정한 사죄를 받길 바라는 피해자들의 간절한 바람을 정부가 짓밟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어제 윤 대통령의 자칭 미래지향적 결단에 국민들이 실의에 빠졌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의 주장을 인정했다"며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는 불법이었고, 그래서 징용 문제는 강제 동원이라는 상식적인 대법원 판결이 대통령에 의해 부정됐다. 침략 전쟁 책임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당당해하고 있을 일본 정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정치가 할머니들 존엄을 못 지켜드렸다. 진정 어린 사과부터 가져오라는 할머니들 불호령을 못 지켜드렸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수십 년 싸움을 자신의 치적 쌓기에 묻으려는 윤 대통령의 결정에 우리 모두 힘 모아 싸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시국선언에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인 양금덕·김성주 할머니도 자리에 함께해 정부의 이번 행태에 울분을 토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윤석열 대통령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반문하며, 일본이 아닌 '제3자가 변제'하는 방안에 대해 강력히 거부했다. 그는 "어디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사람인가, 조선 사람인가,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인지 모르겠다. 힘을 합쳐서 윤석열(대통령에게) 퇴장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나는 그런 돈은 죽어도 안 받는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고생을 했느냐. 일본에 가서 고생했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성주 할머니도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면서 언제까지 일본에 굽히며 살아야 하는지 반문했다. 그는 "정신대에 끌려갈 때 중학교, 고등학교 다 보내주고 일하면 월급도 준다고 꼬셔서 (일본에) 데려가서 평생 골병이 들게 만들어놨다"며 "지금은 나 몰라라 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디다 대고 하소연을 해야 하느냐"고 성토했다. 이어 "일본에게 옛날 몇십 년을 기죽고 살아왔는데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 되겠느냐"며 정부 태도를 지적했다.
이번 시국선언에는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을 비롯해 정의기억연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참여했다. 이 밖에 1532개 시민사회단체와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함세웅 신부, 신경림·황석영 작가 등 각계 원로를 비롯한 9614명이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