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합계출산율 세계 꼴찌인 한국의 ‘저출산 시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고장난 브레이크가 아닌 아예 브레이크 자체가 없는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여실히 드러났다. 밟을수록 빨라만 가는 인구감소 전용 가속페달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불과 10년 만에 반 토막 치며 처음으로 25만 명(현 24만 9,031명)을 넘기지 못했다.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은 0.8명(현 0.78명)을 지켜내지 못했고,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는 5명(현 4.9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을 넘어 인구지진(Age quake)을 향해 쾌속 질주하는 인구재앙을 경고하는 전례 없는 미증유(未曾有)의 통계치만 속출한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 후 결혼도 줄고, 출산 연령은 더 높아지면서 저출산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월 22일 발표한 ‘2022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잠정)’와 지난 3월 22일 발표한 ‘2023년 1월 인구동향’를 종합해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도인 2021년 26만 562명보다 4.42%인 1만 1,531명인 줄어든 24만 9,031명으로 집계됐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25만 명’마저 무너진 것이다. 출생아 수는 2015년 이후 7년 연속 줄었다. 최근 10년 동안 2015년(0.7%)을 제외하고 매년 감소 추세를 보였다. 2012년 48만 명을 넘던 출생아 수는 10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30년 전인 1992년(73만 1천명)과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34.1%)으로 줄었을 만큼 속도가 가팔라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 24만 9,031명 가운데 첫째 아이는 15만 6,100명으로 무려 62.7%를 차지해 전년보다 8,000명(+5.5%)이나 증가했고, 둘째 아이는 7만 6,000명, 셋째 아이 이상은 1만 7,000명으로 전년보다 각각 1만 5,000명(-16.8%), 4,000명(-20.7%)이 감소했다. 첫째 아이 비중은 2012년에는 51.5%로 집계됐으나, 이후 점차 커져 2021년 56.8%로 나타났고 지난해에는 60%를 넘겼다. 첫째 아이 비중이 60%를 넘긴 것은 출산 순위별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1년 이후 처음이다. 첫째 아이 비중이 커진다는 것은 둘째 아이를 안 낳는다는 의미로 대한민국이 그만큼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은 1년 사이 0.03명이 줄어든 0.78명이다. 2018년 처음으로 1명(0.98명) 밑으로 떨어진 뒤 4년 만에 0.2명이 더 줄어든 셈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0.78명대로 떨어진 상황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2020년 기준 평균 합계출산율 1.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을 밑도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조(粗)출생률도 4.9명으로 전년보다 0.2명 줄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출생아 수는 물론 합계출산율, 조(粗)출생률 모두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 이후 3종 세트로 최저를 기록했다. 인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998년 처음으로 1.5명 아래로 내려가더니 2017년 1.05를 마지막 1%대를 기록한 이래 2018년 0.98명부터는 1명을 밑돌기 시작했다. 2019년 0.92명, 2020년 0.84명, 2021년 0.81명, 2022년 0.78명으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1.59명(2020년 기준)은 물론 우리나라 다음으로 낮은 이탈리아 1.24명과 비교해도 한참 낮다. 결혼 연령은 계속 늦어지고, 결혼해도 자녀 없이 신혼을 보내는 기간이 길어지는 데다, 결혼 5년 이내의 초혼 부부의 평균 자녀 수도 계속 줄고 있다. 전국에서 세종이 1.12명이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1명을 넘겼지만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여 1명을 지켜내기 힘들어 보인다. 서울은 0.5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고, 부산 0.72명, 인천 0.75명, 대구 0.76명 등 광역 대도시 출산율이 평균에도 못 미쳤다. 아이를 낳는 여성의 나이는 갈수록 늘어나 지난해 출산한 엄마의 연령은 33.5세로 전년보다 0.2세 높아졌다. OECD 평균인 29.3세보다 4.2살이나 넘게 출산이 늦다. 통계적으로 35세 이상을 고령 산모로 집계하는데 고령 산모 비중이 2012년 18.7%에서 지난해 35.7%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해 역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갈수록 아이를 늦게 낳게 되면서 첫째 아이 평균 출산 연령은 33.0세, 둘째 아이는 34.2세, 셋째 아이는 35.6세로 전년보다 높아졌다. 엄마 연령별 출생아 수는 40~44세를 제외하고, 전 연령층에서 감소했다. 특히, 20대 후반(25~29세) 산모의 출생아 수는 6,100명이 줄었고, 30대 후반(35~39세) 산모 출생아 수도 3,600명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월 26일 내놓은 남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직장인이 절반 가까이인 45.2%였다. 이런 응답은 특히 비정규직(58.5%), 5인 미만 사업장(67.1%), 월 급여 150만 원 미만 노동자(57.8%)한테서 높게 나왔고, 세대별로는 ‘20대’에서 48.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여전히 ‘노동 약자'가 출산·육아 지원 제도에서도 소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육아휴직은커녕 출산휴가조차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한 직장인도 무려 39.6%나 됐다. 일과 생활 균형을 위해 법적으로 보장한 휴가인데도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불이익을 우려하여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제도조차 제대로 활용이 안 되는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임신·육아 등을 위해 노동자가 회사에 노동시간을 줄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근로 시간 단축 청구권’도 실질적인 권리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도 ‘임신기 근로 시간 단축제’를 활용한 직장인은 5.9%,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제’를 쓴 직장인은 6.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법으로 보장된 제도들조차도 ‘그림의 떡’으로만 남아 있는 아픈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애를 둘 이상 낳는 것 자체가 도박이 아니면 모험이라는 볼멘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젊은이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건 참으로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전형(先进典型 │ Typifier)이 아닐 수 없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