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빼는 예테크족...정기예금 '뚝뚝' 대기자금만 급증
투자처 못 찾고 갈곳 잃은 자금들 '채권·CMA'로 이동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은행으로 자금이 몰려들었던 '역(逆)머니무브' 현상이 둔화되고 있다. 은행들의 예금 금리가 내림세로 접어들면서 예테크(예·적금+재테크)족들과 자산가들이 떠나고 있어서다. 반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만 급증하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예금 신규가입금액은 38조3958억원으로 집계됐다. 예테크족들의 신규가입금액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10월 말(81조9735억원) 대비 53%나 감소한 수치다. 3월 가입 건수 역시 79만365건으로 정점(180만2324건) 대비 56%나 줄었다.
정기예금 중도해지도 늘어나고 있다. 1%포인트의 금리라도 더 받기 위해 정기예금 갈아타기를 하던 예테크족들이 이탈하며, 중도해지 건수는 74만8443건에서 18만365건으로 76% 감소했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중도해지 금액은 지난해 10월 32조1226억원에서 지난달 말 6조9095억원으로 78%나 빠졌다.
정기예금 잔액도 지난달 말 감소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은 805조3384억원으로 전달 대비 10조3622억원 줄었으며 정기적금 역시 37조908억원으로 지난달 대비 2312억원 감소했다. 총수신 잔액은 1871조5370억원으로 전달(1889조8045억원) 대비 18조2675억원 감소했다.
은행의 정기예금 신규가입 및 중도해지 사례가 급감하고 있는 것은 시중은행 수신금리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말 4%대 후반에서 11월 초순엔 5%대 초반까지 치솟았던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최근 급락을 거듭하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기준 3.50%)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신금리 하단은 기준금리보다도 낮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날 주요 5대 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1년 만기·6일 기준)는 3.4~3.53% 수준이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채권시장이 경색되면서 금융기관 간 수신유치 경쟁이 치열했지만, 금융당국이 예금금리 인상을 자제한 이후 경쟁이 완화됐고, 은행들도 차환목적의 은행채 발행을 재개하는 등 수신금리 인상의 유인도 사라졌다.
반면 갈곳 잃은 자금이자 대기성 자금 성격이기도 한 '요구불예금'은 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619조2650억원으로 전월보다 10조1116억원 늘었다. 요구불예금은 이자가 거의 없지만 언제든 인출이 가능해 대기성 자금으로 꼽힌다. 입출식 통장이 대표적인 요구불예금 상품이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대신 금리가 평균 연 0.1%대로 낮다.
올들어 요구불예금이 급증한 것은 '대기자금' 성격으로 보인다. 최근 은행 예금금리가 3%대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투자 매력이 떨어졌고, 부동산 침체와 증시 부진 등으로 당장 대안으로 삼을 투자처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한편 갈곳 잃은 시중 부동자금은 채권이나 자산관리계좌(CMA) 등 예금 밖으로 쏠리고 있다. 주식·부동산 등 투자자산으로 옮기기엔 불확실성이 크지만, 시장금리 인하로 은행 예금의 매력이 예전만 못해서다.
실제 채권이나 CMA 잔액은 증가추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개인의 채권 순매수액은 8조655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조4451억원) 대비론 498.9% 많은 수준이며, 기준금리 급등으로 채권투자가 급증했던 지난해 4분기(6조1720억원) 대비로도 40.2% 높다.
채권 종류별 순매수액을 보면 국채(3조487억원)가 가장 많았고, 지난해부터 금리 수준이 높아져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을 끈 여신금융채(2조5966억원), 회사채(2조956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은행채(5118억원), 자산유동화증권(2627억원), 지방채(1182억원) 등은 상대적으로 순매수액이 적은 편이었다. 개인의 1월 말 기준 CMA 계좌 수와 잔액은 각기 3589만개, 46조3511억원이었지만 3월 말 기준으론 3622만개, 52조2754억원이었다. 두 달 새 계좌 수는 약 0.9%, 잔액은 약 12.9% 늘어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금 금리 수준이 3.5% 수준에 머물면서 은행 정기예금으로 쏠렸던 투자심리가 다시 외부를 향하는 분위기”라며 “다만 아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기조가 꺾인 것은 아닌데다 은행 파산, 유가 상승 등 악재가 반복되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채권, CMA 등에 대한 대체투자로 투심이 몰리고 있는 모습”이라고 전했다.